중남미 카리브해에서 발생한 초강력 허리케인 이언(Ian)이 미국에서 인구와 경제 규모가 3위인 플로리다주를 28일(현지 시각) 강타했다. 미 본토를 덮친 역대 ‘톱5 허리케인’ 중 하나로 기록될 정도로 파괴력이 큰 이언은 플로리다주뿐만 아니라 조지아주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등 중부 지역에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켰다. 이에 따라 수백억 달러의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 국립허리케인센터에 따르면 이언은 28일 오전 11시 풍속 시속 250㎞의 강풍을 동반한 채 플로리다주 남서부에 접근했다. 이날 밤 항구 도시 포트마이어스와 경제 중심지 탬파를 통과해 29일 오전 올랜도로 북상했다. 이언은 플로리다주 진입 직전 600㎜의 폭우를 동반, 최고 등급인 5급에 준하는 4급 허리케인으로 덩치를 키웠지만, 내륙에 진입하며 세력이 약화됐다. 29일 오전에는 시속 88㎞의 열대폭풍으로 변해 천천히 이동하며 플로리다를 휩쓸었다. 풍속이 느려진 이언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플로리다는 최대 수심이 3.6m에 달하는 빗물에 잠기고 있다.
29일 플로리다 주요 전력 공급 업체에 따르면 포트마이어스를 비롯한 남서부부터 일대 전력망이 끊기면서 200만 가구 이상이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였다. 앞서 이언이 관통한 쿠바에서도 전국 전력망이 차단돼 2차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플로리다주 곳곳에서는 강풍에 주택과 건물 지붕이 날아가고 가옥과 차량, 주요 시설이 물에 완전히 잠긴 모습이 포착됐다. 신호등과 교통 표지판이 떨어지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주민들이 울면서 군용 트럭을 타고 대피하는 모습이 TV 속보와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속속 전해졌다.
28일 밤 이언이 상륙한 뒤에야 뒤늦게 피난에 나선 주민들이 카운티(주보다 작고 시보다 큰 행정구역)마다 수천 명씩 쏟아져 나왔다. 이언이 휩쓸고 간 뒤 주택과 주요 시설이 대량 파손, 소실돼 ‘홈리스’ 이재민 수십만 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플로리다 당국자들과 주민들은 “이런 무서운 폭풍은 평생 처음 본다”고 입을 모았다.
플로리다 주정부가 미리 주민 250만명을 상대로 대피령을 내렸으나, 주택 등에 고령자 상당수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인명 피해가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플로리다 전역의 통행금지령에도 불구, 해안과 거리에서 강풍 속에 서핑과 수영을 시도하며 사진 찍는 이들이 일부 나와 당국이 “목숨 갖고 장난할 때가 아니다”라며 대피령을 재차 발령하기도 했다.
각 지역마다 구조 요청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전으로 전화와 인터넷 접수가 안 되거나, 허리케인이 지나갈 때까지 구조대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 태반이다. 29일 날이 밝으면서 플로리다 당국은 구조 작업에 착수했다. 일부 종합병원들은 파손 및 침수로 인해 중환자와 응급 환자를 어쩔 수 없이 내보내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또 탬파 인근의 인산염 광산, 공장이 침수돼 유독 물질이 생태계에 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언 때문에 멕시코만 일대 원유, 천연가스 생산 시설이 멈춰 서면서, 최근 글로벌 침체 우려로 하락하던 국제 유가까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7일 2.3%, 28일 4.7% 각각 오르면서 배럴당 80달러대에 다시 진입했다. 유가 상승 시 미국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연준의 긴축 강도가 더 커질 우려도 나온다.
플로리다는 허리케인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지만 3급 이상 대형 허리케인이 직격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중 최고 등급인 5급에 해당하는 초대형은 단 2개였다. 플로리다주에 2018년 상륙한 5급 허리케인 마이클의 경우 16명의 사망자와 250억달러(약 36조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보험사와 재난 전문가들은 이언으로 인한 재산 피해가 200억~400억달러(약 28조~57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공화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언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모든 정쟁을 접고 조 바이든 대통령 등 연방정부와 협력하기로 했다. 드샌티스는 2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플로리다에 아낌 없는 지원을 약속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며 “위기 땐 당파를 떠나 온 나라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