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러시아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이 20일 밤 차량 폭발 사고로 숨진 딸 다리야 두기나의 추모식에 참석했다. /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상적 스승으로 통하는 러시아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60)의 딸 다리야 두기나(30)의 죽음이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파괴 행위를 격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기념일인 24일 전후가 특히 위험하다는 분석이다. 두기나는 지난 20일 밤(현지 시각) 모스크바 외곽에서 도요타 SUV ‘랜드크루저’를 운전하던 중 차량이 폭발해 숨졌다. 그는 평소 독립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부친의 사상에 동조하며 관영 언론 등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해 왔다. 우크라이나 당국의 완강한 부인에도 러시아 관영 언론은 두기나가 “테러 행위”로 숨졌다며 우크라이나를 겨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푸틴의 브레인’으로 불리는 두긴은 22일 직접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다리야 두기나가 탄 차량이 폭발했을 당시 뒤쪽에 있는 별도의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두긴은 자신의 딸이 “눈앞에서 폭발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나치 우크라이나 정권에 의해 자행된 테러 행위”라면서 “우리의 마음은 그저 복수나 응징보다 더한 것을 갈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긴은 “우리는 오직 승리만을 원한다. 내 딸은 처녀의 생명을 제단에 놓았다. 그러니 부디 이겨다오!”라고 했다. 새로운 러시아 제국을 만들고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두긴의 이런 말은 현재의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짓밟아야 한다는 취지로 들린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가 앞으로 수일 안에 우크라이나 민간 인프라와 정부 시설에 대한 공습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우크라이나에 잔류해 있는 미국 시민들에게 즉각 떠날 것을 촉구하면서 “폭발음을 듣거나 사이렌이 울리면 즉각 대피하라”고 권고했다. ABC 방송은 “미국 정보 당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간 인프라를 점점 더 많이 겨냥할 것이라는 정보 분석 결과를 기밀 해제한 뒤 국무부가 경고를 발령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정부 모두 24일을 기점으로 러시아 측이 민간 인프라에 대한 공습을 늘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24일은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축하하는 독립기념일이면서,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꼭 6개월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등에서 일한 적 있는 전직 당국자 믹 멀로이는 “러시아가 모스크바 외곽에서 일어난 다리야 두기나의 차량 폭파를 구실로 삼아 키이우의 목표물을 겨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최근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의 공격 속도는 둔화했다”면서 “수일 내로 있을지 모를 공격이 새로운 공세의 일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완전히 새로운 전략의 공세라기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철도, 쇼핑몰, 아파트 건물 등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 빈도를 기념일에 맞춰 늘릴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20일 “이번 주에 러시아가 특히 끔찍하고 잔인한 무엇인가를 하려고 들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민간인을 보호하고 러시아의 잠재적 목표물이 될 만한 장소를 줄이기 위해 공개 행사들을 취소하고, 키이우시에서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를 하는 것도 금지했다.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자포리자 원전 부근에서 포격이 계속되면서 원전의 안전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2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지난 18일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를 불러 자포리자 원전의 통제권을 우크라이나에 넘기고, 우크라이나 원전이나 그 주변에서의 군사행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