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대표 칼럼니스트 8명을 내세워 각자 과거에 쓴 칼럼의 오류를 인정하는 ‘반성문’을 냈다. NYT는 21일(현지 시각) 정치·외교·경제·기술·사회 각 분야에서 “제가 틀렸습니다(I Was Wrong About…)”로 시작하는 제목의 8개의 칼럼을 게재했다.
NYT가 진보 성향이 강한 신문인 만큼, 칼럼니스트들의 반성은 주로 중도·보수적 관점을 놓쳤다는 고백이 대부분이다. 1851년 설립된 이 신문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이 기획 의도에 대해 “극단화된 정치 환경과 자기 확증 편향에 빠진 소셜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언론부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지적인 소통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정치 전문 기자 브렛 스티븐스는 ‘저는 트럼프 지지층에 대해 틀렸습니다’에서 “내가 기자로 쓴 최악의 첫 문장은 ‘2015년 8월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형편없다고 보지 않는다면, 당신이 형편없는 것’이란 구절”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평생 보호받는 특권층으로 살아왔다.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은 이런 자기 만족적인 엘리트에게 엿을 먹이고,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내준 트럼프에게 열광했다”며 “트럼프 지지층을 ‘도덕적으로 무식한 자’로 비난해선 안 됐다. 생각이 다른 이들을 설득하려면 먼저 그들의 친구가 됐어야 했다”라고 했다.
반면 게일 콜린스는 ‘저는 밋 롬니와 그의 개에 대해 틀렸습니다’에서 “2012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 밋 롬니의 캠페인이 너무 지루했다. 그래서 그가 개를 차 지붕에 태우고 보스턴에서 캐나다까지 운전했다는 일화를 끄집어내 동물 학대로 비판했다”며 “트럼프를 겪어보니 지루한 것보다 더 심한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미 진보 진영의 스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제가 인플레에 대해 틀렸습니다’에서 2021년 바이든 정부가 1조9000억달러(2498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풀어 경기 부양을 할 당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 같은 케인스 학파 일부도 물가 자극을 우려했지만, 나는 ‘걱정말자주의’였다”며 “결과는 40년 만의 인플레”라고 했다. 크루그먼은 자신이 노벨경제학상을 탄 2008년 금융 위기 때 맞춰진 인플레 예측 모델을, 팬데믹이란 이례적 상황이 닥친 2021년에도 적용했다고 털어놨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미 대통령들이 외교 정책 자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토머스 프리드먼은 ‘나는 중국의 검열 정책에 대해 틀렸습니다’에서 “1990년대 중국이 개방 초기에 본 것만 갖고 ‘중국이 자유시장경제와 자유 언론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낙관한 죄를 인정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글로벌 경제 질서에 편입되려 하므로 적어도 경제지들엔 투자자와 혁신가들에게 정확한 뉴스를 제공하도록 허용할 것이며, 이 흐름이 권위주의 체제를 바꿀 것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 정보 분야는 32년 전보단 개방됐지만,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10년 전보다도 닫히고 있다”고 했다.
역사·경제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는 자본주의에 대해 틀렸습니다’에서 “1990년대 시장경제가 역사의 승리자라는 생각에 갇혀, 소련 붕괴 후 단행된 국영기업 민영화만 찬양했을 뿐, 거기서 부패의 싹이 자랄 것이란 생각은 못 했다”며 “러시아는 민영화보다 법과 질서가 필요했던 나라”라고 했다.
IT(정보통신) 전문 기자 파라드 만주는 “난 2009년 모든 이에게 ‘페이스북에 가입하라’고 했다. 모두가 페이스북에 몰려가지만 않았어도 세상은 나은 곳이 됐을 텐데, 참 민망하다”고 했다. 이어 “내가 테크업계 사람들은 다 정직하고 착하다고 주장해서인지, 오바마 정부는 페이스북이 경쟁사인 인스타그램·왓츠앱을 먹어치우도록 놔뒀고, 구글 임원들은 백악관을 매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며 IT업계를 괴물로 키워놨다고 자책했다.
여성 전문 기자 미셸 골드버그는 2017년 할리우드발 미투(성폭행 고발) 광풍이 일 당시, 알 프랑켄 민주당 상원의원 관련 성 추문이 불거지자마자 의회 내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즉시 사퇴를 요구한 칼럼을 썼던 것을 반성했다. 제이넵 투페키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나는 길거리 시위는 무조건 역사의 옳은 편이며, 집단 시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