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알 살람 왕궁에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되자 이 사건의 배후자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며 그를“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주먹 인사’를 건네며 친밀감을 표시했고,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했다. /UPI 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 시각)부터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잇따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 중동 순방을 마쳤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납치·피살한 배후자로 지목됐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주먹 인사’를 나누고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했다. 16일 사우디에서 열린 ‘걸프협력이사회 플러스 이집트·요르단·이라크(GCC+3)’ 정상회의에도 참석해 “미국은 중동의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며 관여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원유 증산에 대한 공식 합의는 즉각 발표되지 않았다.

15일 저녁 사우디 제2도시 제다에 도착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머무는 알 살람 왕궁으로 향했다. 전용차 ‘더 비스트’에서 내린 바이든 대통령이 오른손으로 살짝 주먹을 쥔 채 두어 걸음 내딛자, 왕궁에서 기다리고 있던 빈 살만 왕세자가 성큼성큼 걸어나와 주먹을 마주쳤다.

바이든의 중동 순방에 동행한 미국 기자들이 배제된 가운데 이뤄진 ‘주먹 인사’ 장면은 사우디 국영방송이 촬영해 전파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바이든이 한때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했던 빈 살만과 주먹을 부딪히며 인사를 나눈 점을 꼬집어 “바이든이 주먹 인사로 사우디 왕세자의 ‘왕따’ 시대를 끝냈다”라고 보도했다. 카슈끄지가 칼럼니스트로 일했던 워싱턴포스트의 프레드 라이언 발행인 겸 최고경영자(CEO)는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먹 인사는 악수보다 더 나쁘고 부끄럽다. 그것은 친밀함과 편안함의 정도를 보여준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약 2시간 반에 걸친 회담이 끝난 후 미국 기자들과 만난 바이든은 “회담 첫머리에서 카슈끄지 피살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미국과 나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매우 솔직하게 말했다”라고 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그 일과 관련해 나의 개인적 책임은 없으며 책임자들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는 발언을 했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전했다. 바이든은 “나는 빈 살만 왕세자가 아마도 책임이 있을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고 강조했다.

회담 후 사우디 측도 카슈끄지 문제가 논의된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바이든의 설명보다 덜 대립적이었다. 주미 사우디 대사인 리마 빈트 반다르 빈 술탄 공주는 “(바이든) 대통령이 ‘나는 단지 당신에게 분명하고 직접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빈 살만) 왕세자는 ‘당신이 분명하고 솔직하며 직접적인 것을 환영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또 빈 살만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 수용된 포로들을 상대로 미군이 가혹행위를 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미국도 많은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고 악시오스 등은 사우디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두 사람이 서로 인권 문제를 언급한 후 발표된 양국 공동성명은 관계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선 사우디와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저지하기 위한 협력이 강조됐다. 사우디는 바이든이 지난달 주요 7국(G7) 정상회의에서 출범시킨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협정’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어 바이든은 16일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이사회(GCC)에 참석해 “우리는 중국, 러시아, 이란이 채울 공백을 남겨놓고 (중동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관여가 계속 될 것이라고 재확인한 것이다. 바이든은 또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식량 안보를 위해 미국이 10억 달러(약 1조3250억원)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바라는 원유 증산에 대한 공식 합의는 발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GCC 공동성명도 모호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 통신은 “아랍 정상회의에서 바이든은 중요한 안보, 원유 합의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CNN 등은 바이든이 빈 살만과 회담한 후 “몇 주 내에 추가 조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점을 거론하며 백악관이 다음 달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들이 함께 여는 ‘OPEC+(오펙 플러스)’ 회의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카슈끄지 사건

미국에서 왕실 비판 칼럼을 써오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10월 결혼 관련 서류를 발급받으러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 그를 눈엣가시로 여겨왔던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사건 배후로 지목됐고, 서방국 및 터키와 사우디의 관계도 급속히 악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