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전직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지난해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할 무렵 미국과 유럽,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도피해 호화스러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일부 전직 관료가 탈레반 집권 이전부터 값비싼 외국 부동산을 사들이고, 아프간에 있는 자산을 해외로 쉽게 빼돌리기 위해 외국 시민권을 보유한 정황도 드러났다.

WSJ에 따르면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점령된 지난해 8월 15일 아프간을 탈출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몇 달간 아부다비의 5성급 호텔인 세인트 레지스에 머물렀고, 현재 UAE에서 제공한 개인 빌라에서 지내고 있다. 가니 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국외로 도피할 당시 현금 1억6900만달러(약 2170억 원)를 챙겼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아프간의 마지막 재무장관인 할리드 파옌다는 워싱턴DC 인근에 부동산 두 채를 사들였다. 특히 그는 100만달러(약 12억8000만원)가 넘는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전액을 현금으로 냈다고 한다. WSJ는 “전 세계 난민 캠프 등에 흩어져 고생하는 수만명의 아프간 주민과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했다. 파옌다 전 장관은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우버 기사로 일하는 것 외에는 조지타운대에서 전쟁·국가재건 관련 강의를 하면서 학기당 2000달러(약 240만원) 정도를 받는다”며 “돈 때문에 강의를 맡은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함둘라 모히브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가족과 함께 플로리다의 고급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해변 근처에 있는 침실 4개짜리 저택은 모히브 전 보좌관의 장모 소유로 돼 있다고 한다. 그의 부인도 워싱턴DC에 수익용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니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에클릴 하키미 전 재무장관도 캘리포니아주에 최소 10채의 부동산을 보유 중인데, 가치가 1000만달러(약 128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그는 재무장관 재직 시절부터 캘리포니아 부동산을 사들였다고 WSJ는 전했다.

한편 최근 러시아 침공으로 고전하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아프간 사례처럼 대규모 부정부패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고 WSJ는 보도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원조와 경제 지원 등을 위해 지출하는 금액은 하루 평균 약 1억3000만달러(약 16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제대로 감시하지 않으면 아프간 때처럼 고위 인사들이 이 지원금을 빼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WSJ는 “(우크라이나에서) 더 강력한 감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미국 전·현직 관리들이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