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이 5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 공동 기고를 통해 2024년 대통령 재출마설이 나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는 (워터게이트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상상력조차 뛰어넘는 기만 행위를 했다”며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선동적(seditious)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대선 사기론’이나 그의 지지자들이 미국 대선 결과에 불복해 연방의사당에 난입한 지난해 ‘1·6 사태’가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WP 기고문에서 “우리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익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대통령이 (닉슨 이후로) 없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나타났다”며 “2020년 선거를 뒤집으려는 트럼프의 노력은 닉슨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공화당) 측은 재선을 위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불법 도청을 시도했다. 닉슨 대통령은 각종 선거 공작 계획을 만들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에드먼드 머스키와 조지 맥거번의 사무실을 도청하거나 허위·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비밀 전담팀을 구성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이를 특종 보도했다. 3년에 걸친 이들의 추적 보도로 닉슨은 1974년 미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임기 중 사퇴했다. 두 기자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닉슨이 저지른 범죄의 핵심은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선거 과정’을 전복시킨 것”이라며 “그의 불법 행위는 언론 취재와 상원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 특검, 하원 탄핵 조사, 그리고 대법원 등에 의해 서서히 드러났다”고 했다. 이어 “결국 (언론과 의회, 법원 등) 미국 민주주의의 도구들이 미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퇴진을 불러왔다”고 했다.
이들은 “반면 트럼프는 주(州) 선거 관리들에 대한 전례 없는 공개 협박을 통해 선거 제도를 파괴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식으로 선출된 그의 후임자(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6 사태와 관련, “트럼프의 언사에 이끌려 폭도들이 의사당에 들어왔고, 집단 폭력 행위로 출입구와 창문을 부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들을 제지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선동은 연설이나 조직을 통해 군중이 국가 통치 권력에 반기를 들도록 부추기는 것을 뜻한다”며 “트럼프의 행위는 명백한 선동 행위”라고 했다. 트럼프가 1·6 사태 직전 백악관 남쪽 공원에서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절대 (대선 패배를)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설한 것 등을 언급한 것이다. 이들은 “트럼프는 건국 이후 역사상 다른 어떤 최고사령관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며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선동적인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들의 기고는 특히 1·6 의회 난입 사태를 조사해 온 연방하원 조사위원회의 첫 공개 청문회(9일) 직전에 게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민주당 진영에서는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중간 선거에서 의회 난입 사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구성된 1·6 사태 조사위원회는 12만5000건 이상의 기록을 검토했고, 1000명이 넘는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을 비공개로 수집해왔다. 조만간 약 1년간의 활동 결과가 공개된다. 이번 조사를 주도해온 민주당 진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난입 사태를 배후에서 주도한 사실이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미 미국 사회가 양 극단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기존 여론 지형도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데이비드 시실리니 민주당 하원의원은 4일 CNN 인터뷰에서 “(청문회에서) 충격적인 새 증거가 제시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조사위 소속인 조 로프그렌(민주당)은 “워터게이트 당시는 TV 채널이 3개밖에 없었고 (CBS 전설의 앵커인) 월터 크롱카이트가 사실이라고 말하면 모두가 사실이라고 믿었다”며 “하지만 현재는 사람들이 다양한 소스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영국 가디언은 “(청문회 소속) 위원들이 미국인에게 (1·6 사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