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임무를 완수했다.”
6·25 전쟁 영웅 윌리엄 웨버(97) 미 예비역 육군 대령이 지난 9일(현지 시각) 별세하기 4시간 전 이 말을 남겼다. 그는 전후(戰後)부터 최근까지 6·25 전쟁 미군 전사자 3만6595명, 한국군 지원부대(카투사) 전사자 7174명 등 총 4만3000여 명의 이름을 모두 새긴 ‘추모의 벽’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병상에 누워 마무리 작업에 들어선 추모의 벽 최근 사진을 보자 그는 눈을 크게 뜬 뒤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지난 22일 오후 미국 메릴랜드주 프레데릭에서 열린 웨버 대령의 추도식에는 유족·지인 및 한·미 양국의 참전 노병 등 100명이 참석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황기철 국가보훈처장과 이수혁 주미대사 등이 추도식에 참석했고, 미국 측에선 존 틸럴리·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한나 김 연방 보건복지부 부차관보가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조전을 보냈다. 문 대통령은 황 처장이 대독한 조전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생의 마지막까지 힘써 주신 고인의 희생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윤 당선인도 이날 낭독된 조전에서 “웨버 대령의 고귀한 용기와 희생은 한국민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 공수부대 대위로 6·25전쟁에 참전한 웨버 대령은 1951년 중공군의 수류탄과 박격포 공격에 팔과 다리를 잃는 상황에서도 강원도 원주 북쪽 324고지 전투를 이끌었다. 퇴역 후에는 6·25전쟁과 참전 군인의 무공을 미국 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
웨버 대령의 딸 베스 웨버씨는 아버지에 대한 지인들과 동료들의 추모사에 계속 눈물을 흘렸다. 베스씨는 “돌아가시는 당일 ‘여전히 남북이 통일이 안 되고 분단돼 있는 사실이 안타깝다’ ‘통일된 한국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같은 날) 아버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을 비판하면서 목소리를 높이셨다”며 “그는 끝까지 의식이 명료했다. 아버지는 강한 군인이었다”고 했다.
주미 국방 무관 시절 웨버 대령과 교류했던 신경수 한미동맹재단 사무총장(예비역 육군 소장)은 이날 추도사에서 “그는 1950년 한국에 와 북한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도 함께 지켰다”고 했다. 한미동맹재단과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는 ‘대령 윌리엄 E. 웨버 동맹상’을 제정해 매년 한·미 양국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할 예정이다. 고인은 올여름쯤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