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 김 전 뉴욕남부지검장 대행이 지난 2021년 8월 뉴욕검찰총장실에서 앤드루 쿠오모 당시 뉴욕주지사의 여비서 등 11명 성추행 의혹에 대한 5개월간의 검찰 독립조사를 이끈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발표 직후 민주당 유력대선주자였던 쿠오모는 자진 사퇴, '뉴욕 쿠오모 왕조'가 무너졌다는 말이 나왔다. /EPA 연합뉴스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 이유로 “미국 검사는 기소만 할 뿐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데 대해 준 김(50·김준현) 전 뉴욕남부지검 지검장 대행은 “틀린 말(false)”이라고 말했다. 21일(현지 시각) 자신이 파트너로 있는 맨해튼의 로펌 ‘클리어리 가틀립 스틴 앤 해밀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가 선진국 트렌드”라는 민주당 주장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인 김 전 대행은 상관이었던 프릿 바라라 전 뉴욕남부지검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주변을 수사하다 해임되자 2017년부터 1년간 지검장 대행을 맡았다. 그가 퇴임하자 뉴욕타임스는 “전임의 자리를 채우는 것 이상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변호사 신분으로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의 여비서 성추행 의혹을 조사하는 검찰 독립조사팀(일종의 특검)을 이끌며 주목받았다.

김 전 대행은 “한국에선 미국 검찰이 수사를 못 한다고 알려져 있다”는 기자의 말에 “미국 검사는 수사를 한다. 연방 검사든 주(州) 검사든 수사 초기 단계부터 절대적으로 관여하고(absolutely involved), 여러 수사 기관과 함께 유기적으로 협력한다”고 했다. “이것이 팩트”라고도 했다. 또 “복잡하고 중요한 사건일수록 검사가 수사를 책임진다”며 “권력층 대형 부패 사건은 아예 검사가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준 김이 전 뉴욕남부지검장 대행을 맡고 있던 2017년 뉴욕변호사협회 주최 행사에 참석한 모습. 그는 200여년 역사 미 최고의 검찰 조직인 뉴욕남부지검에서 첫 동아시아계 지검장으로 기록됐다. 첫 아시아계 지검장은 바로 전임이자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의 저자인 스타 검사 프릿 바라라 전 지검장(인도계)이다. /뉴욕로저널

미국은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등 40여 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대부분의 현장 수사를 진행한다. 이 때문에 검찰이 수사에서 손을 뗀 것처럼 보인다. 김 전 대행은 “검사가 범죄 현장에 가거나, 피의자 단독 심문을 하는 일은 드물다”면서도 “검사는 초기부터 수사 방향을 정하고 계속 협업한다”고 했다. 경찰이 피의자 구인에 나섰다가 법적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서 검사에게 전화하기도 하고, 법정에선 검사와 FBI 요원이 나란히 앉아 같이 증인 신문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수사 기관끼리 의견 충돌이 생기면 대개 검사의 판단을 따른다”고 말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묻자 그는 “기소권을 가진 검사는 법정에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며 “법정에서의 방향과 상관없이 수사가 마음대로 이뤄지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미 검찰 조직은 급증하는 강력 범죄와 경제 범죄, 권력층 부패 사건 등에 대처하기 위해 경험이 풍부한 검사들이 중요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수직적 기소제(vertical prosecution)를 도입, 수사와 기소의 융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검수완박’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김 전 대행은 “미국에서도 검찰 개혁 논의가 있는가”란 질문에 “검찰이 처리하는 개별 사건에 대해 비판은 늘 있지만, 사법 체계 근간을 흔드는 극적인 변화를 꾀하자는 주장은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그런 주장이 정치권에서 나온다면) 검사들은 엄청난 정치적 압박으로 느낄 것”이라며 “그것이 검찰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도 검찰 조직이나 검사의 판단에 불만을 갖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한국 검수완박처럼) 법체계 근간을 극단적으로 흔들어가면서 개혁을 주장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만약 의회가 그런 일을 한다면 헌법에 보장된 검찰 독립을 흔들려는 정치권의 외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 로어맨해튼에 위치한 뉴욕남부지검(SDNY). 월스트리트를 끼고 있어 글로벌 화이트 칼라 범죄 수사에 정통하며, 정치적 독립으로 유명해 '뉴욕주권지검(Sovereign District of NY)'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뉴욕남부지검

김 전 대행이 몸담았던 뉴욕남부지검(Southern District of NY)은 미 건국 직후 설치된 미 검찰 조직의 효시다. 월가를 끼고 있어 화이트칼라 범죄와 글로벌 범죄, 정치 거물 수사로 유명하다. 정치적 독립성이 강해 ‘뉴욕주권지검(Sovereign District of NY)’으로 불리기도 한다. “뉴욕엔 민주당과 공화당, 뉴욕남부지검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 전 대행은 “검사는 범죄 증거와 팩트를 엄정하게 추구하고, 오직 법에 따르면 되는 심플한 직업”이라고 했다. 그는 “강도나 살인 같은 비정치적 사건을 성실히 다룬 검사는 정치적 사건도 다르게 다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며 “난 ‘아무것도 고려하지 말라. 유일한 업무는 법에 따라 범죄 소탕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후배들도 그렇게 가르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