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대표적 ‘혈맹’으로 꼽혔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간 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돼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급등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석유 생산을 늘려달라는 미국의 요청도 거절한 사우디는 최근 들어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WSJ는 이날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가 악화된 과정과 현재 상황을 소개했다. 사우디의 통치자 무함마드 빈 살만(37) 왕세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국 분위기가 바뀌었다. 2018년 10월 터키에서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된 사건의 배후로 빈 살만이 지목된 데 대해 트럼프는 양국 관계를 고려, 빈 살만의 연루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빈 살만을 ‘살인자’ 취급하면서 압박을 계속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대선 경선 때 빈 살만을 공개 비판한 바 있다.
대선 때의 ‘신경전’은 바이든 취임 이후로 본격적으로 갈등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작년 9월 사우디 아라비아를 찾아 빈 살만 왕세자와 면담했을 당시 왕세자는 설리번 보좌관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고 WSJ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당시 설리번 보좌관은 ‘사우디와 예멘의 후티 반군 사이의 잠재적인 휴전’을 의제로 논의할 것이라고 백악관은 밝혔었지만, WSJ에 따르면 설리번은 빈 살만 왕세자에게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석유 증산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설리번 보좌관은 카슈끄지 문제를 거론했고, 논쟁 끝에 빈 살만 왕세자가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WSJ는 “왕세자는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해 다시는 논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라며 “이후 설리번 보좌관에게 ‘석유 생산을 늘려달라는 요청은 잊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빈 살만 왕세자는 무엇보다도 사우디의 실질 통치자로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받아들였다고 WSJ는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통화했지만, 실질적인 통치자인 빈 살만 왕세자와는 접촉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 카운터파트 역할을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에게 맡겼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동생 할리드 왕자가 지난해 7월 워싱턴DC 방문 했을 때도 홀대를 당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당시 할리드 왕자는 오스틴 국방장관 및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면담하고, 사우디의 방공시스템 개선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은 사우디가 요청한 면담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할리드 왕자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찬 일정을 취소했고, 당초 계획됐던 일정까지 단축해 귀국했다.
양국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백악관 참모들은 지난 2월 9일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 국왕, 빈 살만 왕세자 간 통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WSJ는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통화 날짜가 다가오자 사우디 관리들은 ‘왕세자가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 정부에 통보해 불발됐다고 한다.
또 사우디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 복원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실망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면서 사우디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사우디는 작년 말 사우디 중부 다와드미의 한 시설에서 중국의 도움을 받아 탄도미사일을 제조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었다. 사우디가 중국에서 탄도미사일을 구입한 적은 있지만, 중국과 합작해 제조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