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조사하게 될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미국은 자국민이 전쟁 범죄로 기소될 가능성을 우려해 ICC 설립 근거 조약인 로마규정을 비준하지 않았다. ICC가 로마규정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들에 대해서도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에 반대해 왔다. 그런데 미국과 마찬가지로 로마규정을 비준하지 않은 러시아의 전쟁 범죄가 문제로 떠오르자 고민에 빠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비판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 범죄자”라고 불렀다. 또 “모든 구체적 사실을 수집해 (푸틴의) 전범 재판 회부가 현실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구유고슬라비아 전쟁이나 르완다 내전 때는 유엔 안보리 결의로 특별 국제형사재판소를 설립했지만 지금은 기소 대상인 러시아가 안보리 거부권을 갖고 있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바이든 말대로 푸틴과 그의 협력자들을 전범 재판에 회부하려면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 집단 학살 등의 기소를 위해 지난 2002년 출범한 ICC가 현실적 대안이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미군의 전쟁 범죄 혐의를 조사하던 ICC 검사장을 제재하며 ICC와 각을 세웠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후 이 제재를 해제해 주며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지난 1999년과 2002년 미국 정부의 ICC 지원을 제약하는 법안을 두 건 입법해 놓은 것이 문제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2010년 이 법안들을 검토해서 미국 정부가 ICC와 관련된 외교 활동을 하거나 ICC가 제3국인의 범죄 혐의와 관련된 특정 사안을 조사할 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ICC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가 ICC에 대한 미국의 입장 변경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명백한 전쟁 범죄의 증거를 모아두는 것이 우선적 초점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등 고위 당국자들도 어떻게 전범 재판을 열 수 있을지에 대해서 “동맹 그리고 파트너들과 협의해야 한다”는 정도의 모호한 언급만 하고 있다. 다만 “ICC에 대해 오랫동안 회의적이었던 의회의 공화당원들도 러시아 당국자들을 심판하는 것을 돕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러면서 연방상원의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의원과 민주당 리처드 더빈 의원이 미 국내의 전쟁 범죄 관련법을 개정해서 미국 법원이 외국인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관할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