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이어 핵(核) 실험 준비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미 정부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미 국방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핵 실험 등 예상되는 도발에 대한 군사 대응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잇따른 북한 도발에도 ‘대화 촉구’를 반복해왔던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미·북 관계가 ‘강대강’ 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CNN방송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다섯 명의 미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이 최근 일부 갱도를 폭파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실험장에서 갱도 굴착과 건설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폭스뉴스도 미 국방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을 미 첩보 위성을 통해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이르면 수주 내에 ICBM 추가 시험에 나설 징후를 포착했다고 CNN은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 국방부는 북한의 ICBM 발사(가능성)에 대해서도 전략 폭격기 비행, 전함 항해에서부터 군사 훈련 강화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대응 ‘패키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4일 ICBM 발사로 4년여 만에 모라토리엄(핵실험·ICBM 발사 유예)을 파기했는데, 미국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핵심 전략 자산인 B-52H 장거리 폭격기나 B-1B 전략 폭격기 등이 한반도에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미 정보 당국 및 미 싱크탱크 분석 등을 종합하면, 북한은 지난해 말~올해 초부터 본격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5일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로 최근까지 잇따라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북한이 핵 실험을 위한 시설 재정비 작업도 함께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조만간 7차 핵실험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1월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일정 조건으로 유지 중”이라고 했었다. 풍계리 실험장 인근에 차량 통행 흔적이 발견되고, 제설 작업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엔 후루카와 가쓰히사(古川勝久) 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 위원이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남측 3번 갱도 입구 등에서 활발한 복구 활동에 나섰다”고 했다. 지난달 4차례 촬영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3번 갱도 입구에서 새 건물이 지어지고, 기존에 반파됐던 건물 주변에 건축 자재 등이 발견됐다고 한다. 북한이 3번 갱도를 복구해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군 당국도 최근 북한이 3번 갱도를 단기간에 복구하기 위해 새로운 통로를 뚫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풍계리 핵실험장 4개 갱도 가운데 1번 갱도는 1차 핵실험(2006년) 뒤 폐쇄됐다. 지난 2~6차 핵실험은 모두 2번 갱도에서 진행돼 추가 실험은 쉽지 않다. 3~4번 갱도의 경우 2번 갱도보다 규모가 크고, 사용되지 않은 채로 관리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인 2018년 5월 한국과 외신 기자들을 풍계리에 불러 2⋅3⋅4번 갱도 일부를 폭파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그러나 북한은 3⋅4번 갱도 내부의 기폭실을 폭파하지 않아 언제든 재사용 가능하다고 한·미 군 당국은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31일(현지 시각) 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핵실험이 얼마나 빨리 가능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며 “(실험장) 복구 활동 속도에 달려 있다”고 했다.
북한이 풍계리에서 핵 실험을 강행할 경우 붕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성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31일 ‘북한의 ICBM 도발: 평가와 전망’ 보고서에서 “2016년 이후 전문가들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붕괴 가능성을 지적해왔다”며 “핵 실험장 붕괴 시 방사성 물질 유출로 인해 북한 전역과 중국까지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 정가에선 북한이 15일 김일성의 110주년 생일(태양절) 및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25일) 등에 맞춰 핵 실험과 함께 ICBM 추가 도발 등을 동시해 감행해 내부 체제 결속을 다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움직임에 대응해 미 정부는 한·일 정부와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한 무력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미군은 북한이 지난달 16일 ICBM 도발을 하기 전 전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스텔스 전투기를 서해에 띄우고, 패트리엇 미사일 요격 훈련 사실도 공개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가 오는 5월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 한·미·일 3각(角) 공조 체제 강화 중요성을 더욱 강조할 것”이라며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 수위도 한·미·일 3국 간 논의를 거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 국무부도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실험 준비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은 최근 많은 도발을 해왔다”며 “상황을 매우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은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해왔다”며 “유엔에서 한국 및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의 동맹 및 파트너들과 계속해서 관여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1차장을 지낸 남주홍 경기대 석좌교수는 “북한은 한국의 정권 교체기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용해 고강도 도발로 한·미에 대한 기 죽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한·미도 북한의 도발에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4월 한반도 정세는 한동안 대치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