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재개하자 줄곧 이를 우려해 온 미국과 일본은 기민하게 대응했다. 미 백악관은 지난 24일(현지 시각) 발사 약 4시간 만에 규탄 성명을 냈고, 국무부는 북한이 25일 신형 ICBM 화성-17형 발사를 시인한 지 1시간 만에 북한의 미사일 개발 기관인 제2자연과학원 등에 대한 신규 제재를 발표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대사는 북한의 ICBM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즉각 요청했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한·일 국방장관과 연쇄 전화 회담에 나섰다. 글렌 벤허크 북부사령관은 24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북한 ICBM이 미국의 본토) 방어 능력과 역량을 넘어설 수도 있다”며 “차세대 요격기를 적시 또는 조기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방위성은 24일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자위대 소속 P-3C 해상 초계기와 F-15 전투기를 발진시켰다. 방위성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고 주장하는 지역 내에 떨어진 화성-17형 정보를 수집했다며 화성-17형의 낙하 흔적으로 보이는 비행운(飛行雲) 영상을 공개했다.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지금까지 (북한의) 일련의 발사와 차원이 다른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가와노 가쓰토시 전 통합막료장(합참의장)은 일본 TBS 인터뷰에서 “다음 단계에서는 일본의 상공을 통과하는 미사일 발사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직접 만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양 정상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이를 강력히 규탄하고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북한에 책임을 묻기 위해 계속해서 협력할 것을 합의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미국 언론은 미국 본토 전역을 사정거리 내에 둘 수 있는 화성-17형에 여러 개의 핵탄두가 탑재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 ABC 방송은 “(기존 북한의 ICBM보다) 더 커진 화성-17형은 (미군의) 미사일 방어를 압도하기 위해 다탄두로 무장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발사의 재개, 미국 미사일 방어망을 회피할 수 있는 다탄두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김정은의 맹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면서 힘겨운 11월 중간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바이든에게 새로운 두통거리”라고 전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조셉 뎀프시 국방·군사 분석 담당 연구원은 “북한이 이동식 발사 차량(TEL)에서 ICBM을 바로 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전 화성-14형과 화성-15형은 몇 대 밖에 없는 소중한 중국산 TEL이 파손되지 않도록 발사대를 분리해서 발사했는데 이번에는 발사대에서 그대로 발사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자체 TEL 개발에 성공해 충분한 숫자의 TEL을 갖게 됐거나, ICBM 성능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 발사 순간 폭발해 TEL이 망가질 우려를 덜 하게 됐다는 뜻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25일(한국 시각 26일 새벽)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회의가 열리지만,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추가 제재 결의는 도출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센터 한국 역사 및 공공정책 담당 국장은 24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북한의 핵 기회주의’란 기고문에서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신경이 분산돼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에 말썽을 부릴 완벽한 기회를 준다”고 했다. 실제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연쇄적으로 열린 나토 특별정상회의, 주요 7국(G7) 정상회의,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우려에 초점을 맞췄다. 바이든 대통령이 브뤼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에 관한 질문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테리 국장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 서방과 대립 중이고 시진핑 중국 주석은 경제 문제와 러시아가 벌인 전쟁의 정치적 파장에 사로잡혀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 대북 제재에 동의할 것 같지는 않다. 양국은 사실 이미 대북 제재 이행을 느슨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