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자, 미국 장관으로서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84)가 23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났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 가족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제64대 미 국무장관이자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오늘 오전 숨졌다고 알리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며 “사인은 암이었으며, 가족과 친구들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2010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체코 이민자 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마리아 야나 코르벨이다. 1937년 5월 15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1세였던 1948년, 공산 정권을 피해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왔다. 1959년 여성 명문대 웰슬리 칼리지에서 정치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언론 재벌 올브라이트 가문의 조셉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했다. 한동안 가정주부로 생활한 올브라이트는 세 딸을 양육하면서도 컬럼비아대 대학원에 입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실 참모로 일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클린턴 행정부 1기(1993~1997) 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2기(1997~2001년) 때는 외교 정책을 총괄하는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재임 중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을 적극 추진했다. 옛 공산권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가 1999년 그의 주도로 나토에 신규 가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2000년 러시아 대통령이 됐을 때 미국 고위 관료로서 그를 처음 만난 이도 올브라이트였다. 올브라이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달 23일 미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격을 감행한다면 역사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브라이트는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는 등 북한 비핵화 문제에도 깊이 관여했다. 그는 200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북한 조명록 총정치국장과 만나 ‘상대방에 대한 적대 의사를 갖지 않는다’는 문서(북미코뮈니케)를 체결했다. 이후 미 국무장관 최초로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당시 그는 금수산 기념 궁전(옛 주석궁)에 있는 김일성의 묘를 참배했다. 올브라이트는 추후 자서전에서 “외교상으로 필수적인 듯했으므로 나는 이 모든 것에 책임이 있는 사람의 묘를 찾았지만 (김일성) 추모에 어떤 경의도 바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핵무기 확산 억제를 추구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한 인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무장관 시절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정치’도 화제가 됐다. 성조기나 독수리 브로치로 미국의 강인함을 과시했고, 비둘기 브로치로 평화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다. 처음 브로치를 달게 된 것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때문이라고 한다. 후세인이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맡고 있던 올브라이트를 가리켜 “사악한 뱀 같은 여자”라고 비판하자, 항의의 표현으로 뱀 모양 브로치를 달고 유엔 안보리에 참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을 포함한 다음 세대의 공무원들에게 자신의 선례를 따르도록 영감을 줬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