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현지 시각) 미국 뉴저지주 포트리시(市)의 한 물류 창고.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돕기 위해 시 당국과 민간단체가 함께 마련한 구호품 접수처에 시민들이 기부한 물품이 상자째 쏟아져 들어왔다. 목록을 보니 아기 기저귀와 분유부터 여성용 생리대, 온열 내복, 아동용 외투, 해열제·소독약·붕대 등 약품, 육포와 초콜릿 등 건조 식품, 일회용 식기, 침낭, 담요, 손전등, 휠체어, 휴대전화, 매트리스 등 웬만한 대형 쇼핑몰을 방불케 했다. 외국에 보내는 구호품인 만큼 헌 옷가지 같은 것이 많을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상당수가 새 물건이었다.
젖병 세트를 사 들고 온 30대 여성 크리스티나씨는 기자에게 “러시아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아기들이 죽어나가고 추위에 떠는 모습에 잠을 설쳤다”며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40대 남자 교사는 “학교에서도 왜 우리가 먼 나라 국민을 도와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며 “주민들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감동적인 일”이라고 했다.
뉴저지 소방국은 불타는 항구 도시 마리우폴 등의 소방관에게 보낼 방화복 등 소방 물품 500세트를 접수처에 맡겼다. 구호품 창고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형 트럭에 기부 물품을 실어 뉴어크항으로 보낸다”고 말했다. 화물 컨테이너선이 대서양을 건너 폴란드로 가고, 우크라이나까지는 트럭으로 실어 보낸다고 한다. 뉴어크항 당국자는 현지 방송에 나와 “기부 물품이 넘쳐 분류·선적 인력이 모자랄 지경”이라며 “팬데믹으로 해상 운임이 너무 비싸졌다. 이젠 배송 비용과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최근 미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우크라이나 기부 물품은 하루 수만t에 달한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선 주민들이 소총 60정을 모았고, 플로리다주 총기 업체는 반자동 소총 20만 달러어치를 비행기에 실어 현지로 보냈다. 뉴욕시 유명 식당과 술집은 우크라이나 기부 행사를 열어 하룻밤에 수만 달러씩 모금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아무 연고가 없는데도 신용카드 할부나 암호 화폐로 기부금을 송금하는 이들도 많다.
이는 과거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아프리카의 분쟁과 대량 난민 발생 사태 때 봤던 미국 내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군사 동맹은 아니지만, 미국인이 ‘정신적 고향’으로 여기는 유럽 대륙에서 2차 대전 이래 처음 일어난 전쟁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7일 “최근 수년간 분열됐던 미국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대대적으로 뭉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냉전 시절 소련의 위협을 기억하는 세대는 물론, 인권과 민주주의 감수성이 높은 젊은 층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켜주지 않으면 자유 민주 진영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위기감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마치 두 개의 미국을 보는 듯 달랐던 보수 폭스뉴스와 진보 CNN의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 보도에선 논조에서 아무런 차이도 느낄 수 없다. 신문사마다 “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더 하라” “푸틴을 확실히 벌해야 한다” “왜 우린 군사 개입을 못 하는지 설명해달라” 같은 독자 투고가 쏟아진다.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이 러시아 신규 투자를 금지하고, 텍사스주가 기업들에 러시아 불매 운동을 주문하는 등 정치 성향이 다른 주에서도 비슷한 러시아 제재가 펼쳐진다.
최근 퓨리서치센터의 미국 여론조사에선 ‘정부의 현 대러 제재에 만족한다’와 ‘제재를 더 해야 한다’는 답변이 80%에 달했다. CBS 조사에선 미 성인 63%가 ‘미국 기름 값이 올라도 러시아산 에너지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바이든 정부가 최근 물가 급등을 ‘자유민주주의 수호 비용’이라고 한 것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