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군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그간 미 행정부와 백악관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겨냥한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에도 ‘전쟁 범죄 행위’라고 규정하는 데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국무부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는 러시아군 구성원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한다”며 “정당한 이유 없고 정당화할 수 없는 선택의 전쟁을 개시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죽음과 파괴를 야기한 가차없는 폭력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의 아파트, 학교, 병원, 핵심 인프라 등을 무차별 공격한 것을 언급했는데, 특히 마리우폴에서 대피소로 쓰였던 극장을 러시아가 공격한 데 대해 “러시아어로 ‘어린이’를 뜻하는 단어가 하늘에서 볼 수 있게 큰 글자로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무분별한 공격, 고의로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과 잔혹 행위에 관한 수많은 신뢰할 수 있는 보고를 봤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피와 눈물로 얼룩지게 했다. 러시아군이 잔혹한 공격을 계속하는 동안 무고한 민간인의 사망·부상은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혐의가 있는 범죄와 마찬가지로 그 범죄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 법정이 특정 사건에 대한 형사 책임을 밝히는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했다.
유엔 최고 법정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최근 러시아에 군사 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명령하는 임시 결정을 내렸다. 지난달 27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ICJ는 국가 간 분쟁에 대해 판결하며, 긴급 상황에서는 전범 행위 본안 판단에 앞서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임시 조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러시아가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ICJ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강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ICJ 명령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러시아군의 전범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증거 수집에 착수한 상태다. ICC는 전쟁 범죄를 주도한 개인을 해당 국가가 기소할 수 없을 때 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한다. 카림 칸 검사장은 지난 2일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저질러진 전쟁 범죄, 인도(주의)에 반하는 죄, 집단 학살에 대한 현재와 과거의 모든 주장에 대한 조사를 망라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