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러시아 서남부 타간로크에 마련된 임시 숙박 시설에 모여 있다./타스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어린이 수천 명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관은 22일(현지 시각) 트위터를 통해 “우크라이나 외교부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어린이 2389명을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주(州)에서 러시아로 강제 이송했다”며 “이것은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납치”라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도 “러시아군은 아이들을 표적 삼아 죽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옮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주의 어린이를 어떤 상황에서 ‘납치’해 강제 이송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에 일각에선 “납치한 아이들 부모를 협박해 러시아 측 정보원으로 활용하려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21일에는 마리우폴 시 당국이 “러시아가 어린이를 포함, 거주자 수천 명을 강제로 러시아로 데려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주민들을 러시아로 보내 우크라이나 현지의 저항 세력을 무력화하고, 정부 탄압을 피해 온 피란민을 러시아가 보살피고 있다는 선전전을 펼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아이들이 있다’ 프라하서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 - 22일(현지 시각) 체코 프라하에서 시민들이 러시아어로‘아이들’을 뜻하는 대형 글자 앞에 모여 최근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 대한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격을 항의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지난 16일 민간인 1000여 명이 대피한 마리우폴 극장에 대한 러시아군 폭격으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수백 명이 잔해에 매몰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극장 주변에는 상공에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아이들’이란 글자를 써놓았지만, 러시아군은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나 소우순 우크라이나 의원은 지난 20일 ‘타임스 라디오’에 출연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시민을 ‘분류 캠프’로 데려간 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러시아 각지로 보내고 있다”며 “끌려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2~3년간 러시아 현지에서 무료로 일하겠다는 각서를 쓰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류드밀라 데니소바 우크라이나 하원 인권 담당관도 “러시아가 철도편을 이용해 납치한 우크라이나인을 경제적으로 낙후한 러시아 지방 도시로 보내고 있다”며 “이는 2차 대전 때 나치가 저지른 것과 다름없는, 인도적 도움을 가장한 납치”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들은 러시아의 잇따른 납치 행각을 ‘민족주의자와 나치의 손아귀에서 우크라이나를 해방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침공 명분을 합리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전후 책임 추궁 과정에서 젤렌스키 정권이 극우 인종주의적 압제를 펼쳤으며, 이를 피해 우크라이나인들이 자발적으로 러시아로 넘어왔다고 주장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은 최근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로 이주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이미 수천 명이 러시아로 넘어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지하철 대피소에 머무는 피란민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는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가 조직적으로 병원을 파괴한 탓에 아이들이 방공호에서 태어나고 있으며, 전기 부족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BBC는 지난 16일 러시아의 마리우폴 극장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건물 잔해에 매몰된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서 “죽기 싫다”는 다섯 살짜리 아이의 울부짖음을 들었다는 생존자 목격담을 전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해외에서 거주하던 일부 우크라이나 여성이 자녀를 구하기 위해 귀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 침공 후 최소 26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해외에서 귀국했는데, 그중 20%가 여성이며, 대부분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타임과 인터뷰한 나탈리 흐멜(33)은 4년 전 이혼하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이주했지만, 전쟁 발발 후 키이우에서 전남편과 사는 아들 아르춈(14), 딸 아나스타샤(10)와 함께 있기 위해 귀국했다며 “걸어서라도 (키이우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국외로 탈출한 사람이 약 356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루마니아로 피신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임시 대피소로 개조한 호텔 연회장에서 다섯 살 아들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여성의 남편과 18살 아들은 러시아와 전투를 벌이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았다. /로이터 연합뉴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이날 연방하원에 4578억유로(약 613조원) 규모의 2022년 예산안을 제출하며 “전후(戰後) 우크라이나를 복구하기 위한 우크라이나판 ‘마셜 플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셜 플랜은 미국이 2차 대전으로 황폐해진 서유럽 16국 재건을 위해 1947년부터 4년간 실시한 대외 원조 계획으로, 서유럽 부흥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 세력 확대를 차단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막는 ‘방패’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