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부터 캐나다 오타와를 점거하고 백신 의무화 조치 철회와 내각 사퇴 등을 요구 중인 트럭 시위대 '자유 호송대'의 모습. 캐나다는 수도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3주째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AFP 연합뉴스

캐나다 트럭 운전사들이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에 반발, 대도시와 국경을 트럭으로 틀어막는 방식으로 벌이는 반(反)정부 시위가 북미를 넘어 세계 각지로 확산하고 있다. 유럽과 호주·뉴질랜드 등에서 트럭 등을 이용한 유사한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장기화하는 팬데믹과 국가 주도 방역에 지친 시민들의 피로와 분노,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극단주의를 타고 거칠게 분출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시위의 진앙인 캐나다는 지난달 말부터 3주째 소위 ‘자유 호송대(Freedom Convoy)’라는 이름의 대형 트럭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정부가 지난달 15일(현지 시각)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들어 미국과의 국경을 오가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백신 의무화 조치를 내리자 당사자들이 반발하며 시작됐다. 트럭은 캐나다와 미국의 중요한 무역 운송 수단으로, 양국을 오가는 트럭 기사만 수십만 명이다.

지난 7일 캐나다 수도 오타와를 점거한 '자유 호송대'의 일원이 휘발유 마시는 시늉을 하며 당국의 제재 조치를 조롱하고 있다. 트럭 운전사들의 시위가 2주 넘게 이어는 가운데 오타와 경찰은 시위대와 그들에게 연료 및 음식을 제공하는 조력자까지도 체포하기로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 트럭 기사들은 지난달 28일부터 “백신 규제는 파시즘” “백신 의무화는 보건 정책이 아닌 정부의 지배 수단”이라고 주장하며 수도 오타와로 집결했다. 이들은 의회 앞 도로를 트럭 400~500대로 막고 경적을 울리며 백신 의무화 철회와 쥐스탱 총리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시위가 토론토·밴쿠버·퀘벡시티 등 주요 도시와 앨버타 등 국경 지대까지 확산하자 캐나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트럭 운전사 강제 연행과 연료 압수 등으로 제압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주말 오타와에선 시위대가 4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트럭에서 쪽잠을 자거나 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는 등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한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트뤼도 총리는 잠시 오타와 공관을 떠났고, 일부 시민들은 “트럭 시위로 일상이 마비됐다”며 맞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화물 트럭 운전사들은 팬데믹 이후 인력 부족으로 업무량이 폭증한 상태”라며 “외국 방역이 완화되는 반면 캐나다의 방역 강도가 높아지자 분노에 불이 붙었다”고 했다. 시위대 일부는 나치 문양이나 미국 남부연합 깃발을 내걸거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호를 내세우는 등 백신 거부 정서가 큰 미 보수·극우 세력과 음모론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9일(현지 시각) 캐나다로 연결되는 미국 미시간주 포트휴런의 블루워터 다리 앞 도로가 심한 교통체증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두 나라를 잇는 주 교통로는 미 디트로이트와 캐나다 윈저를 잇는 앰배서더 다리인데, 이곳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로 사흘째 막히면서 인근의 다른 국경 도로까지 심한 정체 현상을 빚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유 호송대’는 지난 1주일간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온타리오주 윈저의 앰배서더 다리를 점거하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를 일으켰다. 양국 교역 물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통로가 막히자 포드·GM·도요타 등 북미 자동차 공장들이 부품을 공급받지 못해 생산 라인을 세워야 했다. 캐나다 경찰은 13일 “시위대 20~30명을 체포하고, 점거에 동원된 트럭들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반도체 칩 부족과 물류난으로 휘청거리는 자동차 업계가 이번 시위로 8억5000만달러(약 1조200억원)의 경제 손실을 보았다는 추산이 나온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정부의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에 반발한 시위대가 트럭 위에서 캐나다 국기를 흔들며 백신 의무화 철회와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왼쪽 사진). 12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백신 의무화 반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샹젤리제 거리를 차량으로 가로막고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방역 조치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로이터 EPA 연합뉴스

미 국토안보부는 최근 극우 인사들과 지역별 트럭 기사 등이 캐나다를 모방한 시위를 조직하고 있으며, 이달 중 LA에서부터 동진해 오는 3월 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신년 국정 연설을 하는 워싱턴 DC 의사당에 집결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파악하고 대응에 들어갔다.

캐나다 트럭 시위는 백신 음모론을 주장하는 단체 등의 선동을 타고 다른 서구 국가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 국가의 국민은 팬데믹 내내 마스크 착용이나 경제 봉쇄 조치에 반감을 보여 왔는데, 일부는 캐나다 트럭 운전사들에게 연대감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 앞을 신종 코로나 방역조치에 반대하는 '자유 호송대' 시위대가 지나가고 있다. 캐나다 트럭 기사들의 코로나19 백신 의무화 반대 시위를 모방한 프랑스판 '자유 호송대' 시위대 일부는 이날 파리 시내 진입에 성공했으며,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가스 등을 뿌리며 진압에 나섰다. 이날 파리에선 7200명이, 프랑스 전역에선 3만명 이상이 백신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에선 지난 11~12일 캐나다의 ‘자유 호송대’ 시위를 모방해 프랑스 전역에서 모여든 트럭과 캠핑카, 트랙터 등 대형 차량 500여 대와 시위대 7600여 명이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앞 등 도심을 점거했다. 이들은 “정부가 코로나 방역이란 교활한 방법으로 국민의 자유를 갉아먹고 있다”며 “즉시 모든 방역 조치를 해제하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최루가스를 쏘며 해산에 나섰고, 54명을 체포했다. 이들 중엔 2018년 유류세 인상에 저항하는 반정부 폭력 시위의 상징인 ‘노란 조끼’를 입은 이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대선을 두 달 앞둔 프랑스 정부가 초반부터 강경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왔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도 트럭 등 차량 수십 대가 의회를 에워싸 출입을 차단했다. “백신 패스가 통제 수단이 됐다”고 주장하는 이들 사이로 ‘사랑과 자유, 독재 금지’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든 도보 시위대가 합류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의 시위대가 14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집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각국이 긴장하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의 의사당 주변에서 경찰이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 의무화 반대 시위대를 해산시키면서 일부 참가자를 체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캐나다 트럭 운전사 시위를 성원하는 연대 시위가 사흘째 벌어졌다. /AP 연합뉴스

지난 9일 호주에선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는 시위대 1만명이 “자유”를 외치며 수도 캔버라의 의회를 에워쌌다.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서도 트럭 시위대 수천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백신 접종 반대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는 텐트에서 노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