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러 페일린(Palin) 전 알래스카 주지사‧공화당 부통령 후보(2008년 미 대선)가 뉴욕타임스(NYT)의 2017년 사설이 자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NYT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이 미 언론계와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일부터 미 연방법원의 뉴욕남부(맨해튼) 지방법원에서 5일째 진행 중이다.
그동안 미 언론사들은 미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freedom of the press)’ 뿐 아니라, 1964년 미 연방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내린 ‘NYT 대(對) 설리번’ 소송<아래 참고>의 판례를 통해 막강한 언론의 자유를 누려왔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공직자‧공인의 경우엔 명예훼손이 인정되기 위해선 보도상의 오류뿐 아니라, 이 오류가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를 갖고 진실을 악의적으로 무시한 결과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미 언론사들은 ‘고의가 없는 오류’로 인한 명예훼손 소송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 판결에 따라 ‘언론의 자유’에 영향 주는 블록버스터 재판
NYT도 대부분의 명예훼손 사건은 판사에 의해 기각됐다. NYT는 지난 50년간 미국 영토에서 명예훼손 소송으로 진 적이 한 번도 없다. NYT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이 실제 재판으로 이어진 것도 근20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 소송은 결과에 따라 미국 사회가 폭넓게 인정해 온 ‘언론의 자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미 언론사들과 법조계가 주목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블록버스터 재판”이라고 평했다.
◇ 2017년 NYT의 사설에서 발단
뉴욕타임스는 2017년 6월14일자에 ‘미국의 살인 정치(America’s Lethal Politics)’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그 전날 버니 샌더스(민주당 상원의원) 지지자이자 반(反)트럼프주의자가 친선 야구경기를 위해 연습 중이던 공화당 의원들에게 난사한 사건을 다뤘다. 그러면서 6년 전인 2011년에 애리조나주 투손의 한 수퍼마켓에서 정신병을 앓던 남성이 민주당 의원 가브리엘 기퍼즈를 쏴 중상을 입히고 6명을 살해한 사건을 함께 언급했다.
NYT 사설은 이 2011년 총격 사건 전에, 페일린 측이 반드시 공략해야 할 민주당 의원 지역구들을 조준 십자선으로 표시한 지도를 배포한 것을 언급했다. 이 ‘십자선 미국 지도’에는 기퍼즈 하원의원도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2011년) 범인을 정치적으로 선동한 연관성은 분명히 존재했다(the link of political incitement was clear)”고 썼다. 페일린이 십자선 지도를 나눠주자, 범인이 자극을 받아 기퍼즈 의원을 쐈다고 읽힐 수 있는 문장이다. 그러나 이 연관성은 어떠한 수사에서도 드러난 바가 없었다. 다음날 이 문구는 온라인에 게재된 지 12시간 만에 “어떤 것도 이 난사사건과 연결됐다고 확정된 것은 없었다”는 문장으로 교체됐다.
◇ 페일린의 명예훼손 소송도 처음엔 기각돼
언론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 덕분에, 페일린의 소송은 애초 기각됐다. 그러나 2019년 3인 재판부로 구성된 항소법원은 기각 결정을 번복했고, 1월24일부터 정식 재판이 시작했다. 그러나 페일린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는 바람에, 열흘간 늦춰졌다.
트럼프 이후에, 언론사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뀐 것도 한몫을 했다. 트럼프는 2016년 미 대선 캠페인 때부터 기자들에게 적대감을 보이며 “전에는 결코 소송 당하지 않았던 당신 같은 사람들이 소송 당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페일린 측 “허위사실 악의 있었다”
페일린 변호사 측은 2017년 당시 NYT의 논설실장이었던 제임스 베넷(Bennet)이 2011년 페일린의 정치행동위원회(PAC)가 배포한 ‘십자선 지도’와 총기 사건을 연관 짓는 증거가 전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무모하게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기 형인 콜로라도주 연방 상원의원인 마이클 베넷과 마찬가지로, 총기 소지의 자유를 외치는 페일린에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페일린 측은 “설리번 판례를 완전히 번복할 필요는 없지만, 이제 미디어 환경이 달라졌고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평판 간에 균형을 잡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자들에게 허위 기사에 대해선 법적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자기 절제’도 한다는 것이다.
◇ NYT “악의 없는 편집 상의 실수” “곧 정정했는데 무슨 명예훼손?”
NYT는 “베넷 당시 실장이 실수는 했지만, 악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온라인에 게재한 뒤 밤새 많은 비판이 일어 12시간 내에 정정했다고 강조했다. NYT 측은 “페일린 이름이 사설 제목에 나온 것도 아니고, 문장 속에 잠시 언급됐다가 정정됐는데,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맞섰다.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는 법학자들은 “악의가 없는 실수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 이는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에 매우 위협적일뿐 아니라, 대형 언론사 소속이 아닌 개별 기자들은 더욱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또 공직자‧정치인들이 명예훼손 위협을 들어 뉴스 취재, 보도를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날밤 NYT에선…
9일 법원에서, 베넷은 이 사설이 발표되기 전에 사내에서도 논란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최초의 원고가 왔을 때, 일부 논설위원들은 (다른 부분에서) 설득력이 약하다고 했다. 이런 경우, 통상 처음 사설을 쓴 논설위원에게 수정을 지시하는데, 마감 시간이 코앞이라 베넷은 직접 수정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가득했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선동’이란 문장이 추가됐다. 하지만, 그는 온라인 게재 전에 사내의 여러 편집자들이 최종 원고를 봤으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설은 총기가 넘쳐나는 미국 사회에서 살인을 초래하는 정치 풍토를 비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에 NYT 웹사이트에 게재되자, 곧 NYT의 보수 칼럼니스트인 로스 다우타트가 베넷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총기사건과 페일린의 ‘십자선 지도’를 연결 짓는 것은 매우 황당하다”는 내용이었다. 다우타트는 그날 밤 온라인에서 엄청난 비판이 인 것을 봤고 “정정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넷은 최초 원고를 쓴 논설위원에게 사실 확인을 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내기만 했다. 논설위원은 이미 잠자리에 든 뒤였다. 베넷은 그날 뜬눈으로 밤을 샜고, 다음날 바로 정정을 했다.
베넷은 2020년 NYT를 떠났다. 미국 도시들이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BLM)’ 캠페인으로 소요와 폭동에 휩싸이던 당시, 베넷은 “질서 회복을 위해 군을 투입하라”는 팀 카튼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의 글을 게재했고, 이게 NYT에서 문제가 돼 사임했다.
베넷은 8일 법정에서 “나도 페일린 지도가 투손의 난사범을 부추겼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설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베넷은 “이 사건 직후 CNN 방송을 통해 페일린에게 직접 사과의 글로 썼지만, NYT의 정책에 따라 이 사과문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NYT는 정정보도문 처음에 “오류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we regret the error)”를 써서, 다른 사과 문장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 NYT 대 설리번 소송
1960년 NYT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위증 혐의로부터 변호할 기부금을 요청하는 전면(全面)광고를 게재했다. 당시는 미 인권운동과 남부 주들의 노골적인 탄압이 거셀 때였다.
이 광고는 앨라배마 주 몽고베리시 경찰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내용도 담았는데, 킹 목사 체포 건수‧시위 참여 학생들의 퇴학 여부‧인권 유린 사실 등에서 일부 사실적 오류가 있었다.
당시 몽고메리시 공공안전 책임자였던 L B 설리번은 비록 광고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부하 경찰에 대한 공격은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설리번은 NYT에 광고 내용 중 잘못된 정보들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NYT는 거부했다. 설리번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주 대법원은 설리번에게 5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타임스는 연방 대법원에 상고했고, 1964년 연방 대법원은 명예훼손 원고가 공직자이거나 선거 출마자라면 “언론기관이 허위 사실을 무모하게 무시한다는 인식으로 보도해, 실제적인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며 만장일치로 NYT의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미 수정헌법 1조 ‘표현‧언론의 자유’가 결과적으로 공직자들의 명예훼손 소송권을 제약하게 되는 기념비적인 판결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