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들이 어디에 숨더라도 미국은 이들의 위협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예고되지 않은 대국민 연설을 했다. 전날 밤 미군 특수부대가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이브라힘 알 하시미 알 쿠라이시를 사살한 사실을 밝히며 “우리는 당신들(테러리스트) 뒤를 쫓을 것이고 찾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바이든 행정부는 알 쿠라이시 제거 작전 계획과 경과를 상세히 밝히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상황실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공개했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실패, 팬데믹 장기화, 인플레이션 등 국내외 악재로 최근 30% 초반까지 떨어진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대테러전 성과를 집중 부각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미 중부사령부가 수행한 알 쿠라이시 제거 작전은 최정예 특수부대원 투입, 드론을 통한 상공 감시, 철수 작전 중 헬기 폭파 등으로 긴박하게 진행됐다. 2일 새벽 1시쯤 알 쿠라이시가 은신하던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州) 아트메흐에 미군 헬기 3대가 착륙했다. 터키 국경과 가까운 이들리브주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IS의 본거지였다. 헬기와 공격용 제트기, ‘킬러 드론’이라 불리는 MQ-9 ‘리퍼’ 무인 공격기의 엄호를 받은 미군 특수부대 24명이 올리브나무에 둘러싸여 내부가 가려진 3층 주택을 에워쌌다. 알 쿠라이시가 아내와 세 자녀, 여동생 등과 함께 숨어 지내던 곳이었다. 11개월 전부터 이곳에 은신하던 그는 기도와 목욕을 하러 옥상으로 나오는 것 외엔 항상 3층 실내에 머물렀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미군 대원들은 알 쿠라이시에게 확성기를 통해 아랍어로 “당신이 항복하면 모두가 안전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45분간 투항을 권유했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이 나와 “내 아이들이 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목격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이후 이 건물 1층에 살던 성인 부부 가족이 탈출했다.
얼마 후 건물에서 큰 폭발음이 발생하면서 일대가 흔들렸다. 3층에 있던 알 쿠라이시가 폭탄을 터트린 것이다. 알 쿠라이시와 가족들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폭발 규모가 커 집 밖과 주변으로 시신들이 튕겨 나왔다고 한다. 폭발 후 2층에서 알 쿠라이시의 부하 한 명이 미군 특수부대와 교전을 벌이다가 사망했다.
미군은 작전에 투입한 헬기 중 1대가 기계 결함으로 문제를 일으키자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 다른 장소로 이동시킨 뒤 폭파했다. 첨단 기기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미군 대원들은 작전 돌입 2시간 후인 오전 3시쯤 헬리콥터를 타고 시리아를 빠져나왔다. 이번 작전으로 민간인을 포함, 약 13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 언론 매체들은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 정부는 “사상자는 모두 (미군이 아닌) 알 쿠라이시의 자폭 등으로 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이번 작전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정보원을 가동해 미국이 알 쿠라이시를 찾는데 기여했다”고 이스라엘 채널13 방송에 전했다.
알 쿠라이시는 지난 2019년 10월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군 작전으로 제거된 IS 초대 수괴인 아부바르크 알 바그다디의 후계자다. 이라크 탈아파르 출생으로, 육군 장교 복무 경력이 있는 그는 지난 2014년 6월 IS가 모술을 점령하는 등 이라크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당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이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지하 상황실에서 작전 상황을 지켜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서 재킷을 벗고 흰 와이셔츠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바이든 대통령은 검은색 마스크를 끼고 중앙에 앉아 있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 옆에 앉았다. CNN은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들이 ‘엄청난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전 성공 뒤 상황실을 떠나면서 “우리 부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이 ‘주인공’이 된 이 사진은 백악관이 9·11 테러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2011년 사살하고 공개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사진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상황실 중앙이 아닌 한쪽 구석에 앉아 작전을 지켜보고 있었고, 사진의 초점도 오바마 대통령이 아닌 각료들과 군 참모 등에게 맞춰져 있었다. CNN은 “(알 쿠라이시 사살은) 바이든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테러 작전”이라며 “백악관은 (성과 부각을 위해) 이를 십분 이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IS에서 알 쿠라이시를 계승할 후계자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향후 외부에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테러 전문가인 세스 존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NBC방송에 “최근 수년간 지도부가 잇따라 암살당한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신변 안전에) 훨씬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