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째를 맞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역점 어젠다인 ‘사회복지예산(Build Back Better·BBB)’ 법안이 새해가 돼서도 통과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 민주당 지도부가 해당 법안의 상원 통과를 위해 표결 정족수를 변경하는 방안 검토에 본격 나섰다.
그러나 지난 2005년 부시 행정부 당시 공화당 상원지도부가 연방 법관 인준 문제를 두고 해당 규정을 바꾸려 했을 때 과거 민주당은 이를 ‘뉴클리어 옵션(핵폭발적인 옵션)’이라며 강력 반발했었다. 한번 단추를 누르면 양당이 더 이상 대화없이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이번에 ‘표결 룰’을 바꿀 경우 “법안 통과를 위해 근본 원칙도 뒤집는다”는 공화당의 비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법관 등 주요 인사 인준을 위해서만 예외적으로 쓰여왔던 표결 규정 변경을 이번에 민주당이 강행할 경우 향후 공화당이 이 규정을 활용해 민주당 반대를 무력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3일(현지 시각) 민주당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는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상원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진화해야 한다”며 “급한 법안 처리를 위해 공화당이 계속 법안 처리에 반대할 경우 오는 17일(마틴 루터 킹의 날)까지 (정족 수를 축소하는) 규정을 바꾸는 것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상원의 법안 처리 과정에서 의사 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차단하고 표결을 실시하려면 100석 중 60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공화당의 반대는 물론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 등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어 통과가 어렵게 되자, 토론 종결 정족수를 ‘과반’으로 축소해 법안 통과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예산안에 ‘핵 옵션’을 도입하는 안건도 표결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수가 50 대 50이기 때문에, 정족수를 줄이려면 맨친 의원·키어스틴 시너마 의원(애리조나) 등 복지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 내 중도파를 설득시켜야 하고 공화당의 일부 도움도 필요하다.
그러나 맨친 의원은 4일 CNN 인터뷰에서 “(표결 변경은) 어려운 일”이라며 “결국 우리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칠면조에 한번 자국이 남게 되면 결국 한 마리를 다 먹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고도 했다. 극단적인 방안을 쓰는 것은 장기적으로 민주당에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핵 옵션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인 2013년이었다. 공화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들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통해 번번이 발목을 잡자 해리 리드 당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공화당의 반발에도 ‘핵 옵션’ 안건을 올려 통과시켰다. 그 당시에도 맨친 의원은 해당 안건에 반대 의견을 냈었다.
그런데 공화당은 트럼프 행정부였던 2017·2019년 두 차례 대법관 후보 등 주요 지명자들의 인준 처리를 위해 핵 옵션을 활용했다. 민주당이 처음 도입한 제도를 공화당이 더 많이 이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중도파 일각에선 “극단 조치를 쓰는 것이 맞느냐”는 우려가 나온다고 한다.
이런 우려에도 슈머 원내대표는 이날 CNN 인터뷰에서 “상황이 바뀌면, 규칙도 바뀌어야 한다. 이 새로운 공화당 (반대) 때문에 상황이 확실히 변한 것”이라며 규정 변경 강행을 시사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맨친, 시너마 의원 등이 이 핵옵션 안건에 찬성하도록 압박한다는 전략이지만 외신들은 “맨친 의원의 입장이 완고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맨친 의원은 BBB 법안 자체에 대해서도 이날 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백악관과) 진행되는 협상이 없다”고 해 법안 처리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