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이 오는 10일(현지 시각) 각료급 회의를 열어 핵(核) 사용 전략 지침과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할 것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9일 보도했다. 이 회의를 앞두고 주요 동맹국들은 역내 핵 억지력이 감소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 정부가 내년 1월 발표할 핵 전략 지침인 ‘핵 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작성하고 있다. 앞서 워싱턴 정계 및 외교가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핵무기 정책으로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을 채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은 미 본토가 직접 핵 공격을 받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미국이 이 원칙을 채택할 경우 국제사회의 안보 환경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러시아·중국·북한 등이 핵무기 또는 압도적 재래식 전력을 내세워 주변국을 압박하거나 실제 무력 사용에 나설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국·프랑스·독일·일본·호주 등 동맹국들이 이를 막으려 잇따라 로비를 벌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FT는 이날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들의 우려가 커지자 불사용 원칙은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잇따라 설명했다”며 “이에 동맹국들은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FT는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바이든 핵심 참모들이) 조만간 바이든 대통령에게 ‘단일 목적(sole purpose)’ 원칙을 채택할 지 여부에 대한 안건을 보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단일 목적’은 미국의 핵무기는 재래식 및 생화학 무기를 제외하고 오직 핵 공격에 대한 대응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시절 수차례 강조했던 원칙이다.

그간 미국은 핵무기 사용과 관련해 ‘의도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적의 핵 공격이 임박한 경우 먼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놨다. 특히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나 생화학 무기 등의 공격을 받더라도 핵무기를 사용할 여지를 만들어놨다. 그러나 단일 목적 원칙을 채택할 경우 핵 사용의 범위, 가능성은 이전보다 좁혀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동맹국들은 이럴 경우에도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 공약을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실제 고노 다로 일본 자민당 홍보본부장은 지난 7일 미 씽크탱크 헤리티지재단 행사에서 “단일 목적은 중국과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이 행사에서 헤리티지 재단 정책분석가인 패티 제인 갤러도 “중국이 핵 증강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왜 지금이 핵 억제력을 줄여야 할 때인가”라고 했다.

FT는 미 의회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군대를 집결시키는 동안 미국의 핵 신고 정책을 바꾸는 것은 푸틴은 물론 우리의 동맹국들에게도 최악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단일 목적 원칙 채택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핵 사용과 관련한) 더 명확한 원칙이 안정성을 증진시키고 충돌의 가능성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시절 미국의 핵무기 선제 핵무기 사용은 억지, 반격만을 위한 ‘단일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