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외교 차관 기자회견이 17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에서 예정됐다가 돌연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한·일간 이견(異見) 때문이라고 미국 정부는 밝혔다. 이에 미국의 부장관이 홀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은 북한이나 대중 견제 이슈 등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전개하는 데 있어 한·미·일 3각 협력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기자회견 무산으로 미국의 이런 구상에 차질이 있다는 것이 외부로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셔먼 부장관과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오전 10시부터 세 시간 넘게 외교차관 협의회를 진행했다. 이번 협의회는 지난 7월 이후 네 달 만에 삼국 외교차관이 모이는 자리였다. 이번 협의회에서는 코로나19 대응 및 팬데믹 이후 재건, 공급망 회복성을 비롯해 한반도 비핵화 등 다양한 의제에 관한 협력이 논의됐다. 한·미·일 외교차관은 당초 협의회 이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었다.
한·미·일 3국의 기자들도 사전에 풀(Pool) 취재단을 구성해 회견장에 참석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1시간 40분 앞두고 주미 한국대사관 측에서 공동 회견 대신 셔먼 부장관 혼자 회견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 오후 2시 시작된 기자회견에는 셔먼 부장관만 회견장에 나타났다. 실제로 단독 회견으로 형식이 바뀐 것이다. 셔먼 부장관은 “한동안 그랬듯이 일본과 한국 사이에 계속 해결돼야 할 일부 양자 간 이견이 있었다”며 “이 이견 중 하나가 오늘 회견 형식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이견은 오늘 회의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3국 협력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며 3국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셔먼 부장관이나 국무부 등은 이날 한·일 외교차관이 불참한 ‘이견’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다만 한·일이 지속적으로 충돌했던 과거사 문제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회견에서는 최 차관의 중국 상대 ‘전략적 파트너’ 발언에 관한 질문도 나왔다. 최 차관은 앞서 지난 1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에서 교역 규모 등을 언급하며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라고 했었다. 셔먼 부장관은 이에 대해 “우리의 관심사가 갈리고 세계의 평화와 안보, 번영에 위협이 있다고 보일 때는 중국에 도전할 영역이 있다”며 “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과 한국, 일본이 모든 나라 국민의 세계적 번영과 평화, 안보를 위해 하는 일에 한마음 한뜻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대중 전선(戰線)에 한국이 미국과 함께 서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