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에 접한 샌타 바버라 소재 캘리포니아대가 지난달 5일 승인한 초대형 기숙사 디자인을 놓고, 학생들과 지역사회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대학 디자인 검토위원회의 한 건축가 위원은 “부모이자 한 인간으로서 이 디자인에 반대한다”며 위원직을 사임했다.
대학 측이 디자인을 승인한 초대형 기숙사는 무려 4500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입주하며, 2025년 완공 예정이다. 건축비도 10억 달러(약1조1780억 원)에 달한다. 이 건축비 중에서 2억 달러를, 올해 97세인 억만장자 찰스 멍거(Munger)가 2016년에 기부했다. 멍거는 워런 버핏이 세운 투자회사 벅셔 해서웨이의 부회장이자, 그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기숙사의 이름도 ‘멍거 홀’이다.
하지만, 이 억만장자(23억 달러 재산가)의 기부엔 하나의 조건이 달렸다. “기숙사 침실에 창문은 없어야 한다.” ‘노 윈도우(no windows)’에 대한 그의 논리는 이렇다. “건축비 절감, 투신자살 방지 차원뿐 아니라, 학생들이 잠자리에서 벗어나 햇빛이 들어오는 공동 구역에서 서로 어울리게 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기숙사 설계도에 따르면, 체육관‧다목적실‧학습 라운지 등 기숙사의 바깥쪽을 이루는 공동 구역엔 태평양에서 쏟아지는 햇빛과 바람을 받는 창문이 있다. 그러나 건물 내부는 좁은 침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전혀 창문이 없다. 침실엔 LED 등과 기계식 환기시설이 설치된다.
이 대학의 디자인검토위원회 위원인 건축가 데니스 맥파든은 지난달 24일 “이런 사회‧심리적 실험과 같은 디자인을 승인한 대학 결정”에 강력한 항의하며 사임하는 편지를 썼다. 그는 “지금까지 멍거 홀보다 더 크고, 더 파괴적일 수 있는 프로젝트를 본 적이 없다. 기숙사 내부(침실 구역)도 육체‧정신적 건강을 위해 자연광 및 자연에 노출돼야 한다. 건축가이자 부모, 인간으로서 학생들이 이런 데 사는 것을 지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 기숙사의 인구 밀집도는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당 2만3234명) 다음인 전 세계 8위에 해당한다”고 비난했다.
학생들도 “감옥 독방 같다” “우울증에 걸려 자해(自害)하라는 것이냐”며 디자인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학생들과 지역 신문은 ‘멍거 홀’을 기숙사(dorm)와 고질라(Godzilla)의 합성어인 ‘돔질라(dormzilla)’라고 부른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는 지난 1일 “심술궂은 억만장자가 감옥같은 교도소를 대학 캠퍼스에 짓게 허용하지 말라”는 글을 실었다.
물론 멍거는 이런 비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는 “무식한 사람이 떠나면, 나는 그걸 플러스로 여긴다”며 “여러 건축가의 조언을 받아 내 개념을 담아낸 디자인”이라고 지역 언론에 말했다. 그는 “이 기숙사엔 LED 등이 달린 가상 창문이 있어서 밤낮에 따라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며 “당신 인생에서 태양빛을 조절할 수 있소? 여기선 가능하오”라고 말했다.
멍거에게 ‘창문 없는 기숙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그가 1억1000만 달러를 기부해 모교인 미시간대학교에 세운 대학원생 기숙사도 창문이 없다. 아예 침실에 가상 창문도 없다. 이곳에 살았던 학생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진 않다. 한 학생은 “침실에 창문이 없으면,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거기서 만난 모든 사람은 은둔형이었다”고 잡지 뉴요커에 말했다. 한편, 멍거 자신은 창문이 매우 많은 로스엔젤레스의 저택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