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도시 뉴욕시를 이끄는 빌 더블라지오(60) 뉴욕시장이 ‘권력 남용’ 스캔들에 휩싸였다. 경찰 소속 경호 인력과 관용차를 경호 대상이 아닌 가족의 사생활에 동원하고 시정과 관계 없는 대선 경선 출마 때 받은 경호 비용을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직 시장의 권력 남용을 밝혀낸 것은 뉴욕시청 조사국(DOI)이었다. 조사국장은 검사 출신으로 더블라지오 시장이 임명한 사람이었다. 뉴욕시 조사국은 7일(현지 시각)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시장을 공무집행 방해 또는 배임 혐의로 기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고,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소속 더블라지오 시장은 2014년부터 재임했으며 내년 초 퇴임 뒤 뉴욕주지사 선거에 나설 예정이다.
뉴욕시 조사국은 7일 49페이지짜리 ‘더블라지오 시장 경호 문제 조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엔 가장 먼저 “더블라지오 시장의 딸 키아라(26)가 2018년 혼자 살던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맨해튼의 시장 관저로 이사할 때 뉴욕 경찰 4명과 시청 직원 3명이 관용 밴에 이삿짐을 실어 날라줬다”는 점이 적시됐다. 조사국은 해당 경찰과 직원 인터뷰는 물론, 더블라지오 시장의 부인 셜레인 매크레이가 조사 면담에서 “나와 딸이 침대가 너무 무거워 들지 못하니,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직원들이 먼저 도와줬다”고 주장한 발언, 그리고 시장 부부가 딸의 이사 전후로 주고받은 통화 내역까지 확보해 보고서에 담았다. “경호 대상이 아닌 시장 딸의 명백한 사적 생활에 공공 자원이 함부로 쓰였고 이는 시장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조사국은 또 “더블라지오 시장의 아들 단테(24)가 수년간 관저에서 코네티컷주 예일대까지 8회 정도 경호 인력 도움으로 통학을 했고, 예일대 졸업 후엔 역시 관저에서 살며 뉴욕시내 직장까지 주중 매일 관용차로 출퇴근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더블라지오 시장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뉴욕을 방문할 때 수차례 경호 인력이 동원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블라지오 시장의 2019년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 당시 문제도 지적했다. 뉴욕시가 경찰 등의 선거유세 경호에 32만달러(약 3억8000만원)를 지출했지만 이 돈을 2년이 다 되도록 시에 갚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사국은 “뉴욕경찰은 정치적 활동에 동원될 수 없다”며 “특히 시정과 관계없는 대선 캠페인에 든 비용은 갚아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마거릿 가넷 DOI 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찰과 시청 직원들이 ‘우버 기사’가 됐다고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더블라지오 시장이 경찰 경호를 개인 ‘컨시어지 서비스(호텔의 고객 편의제공 서비스)’로 전락시켰다”고 말했다.
이날 보고서에 더블라지오 시장은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시간 넘게 “불공정하고 부정확한 보고서”라고 반발했다. 더블라지오 시장과 그 가족에 대해 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 등으로부터 수백 차례 테러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 경호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뉴욕시 조사국은 약 150년간 뉴욕시 공무원의 윤리 문제를 조사해온 독립 기구다. 19세기 뉴욕시의 이권사업을 독식하며 부패 정치인으로 악명을 떨쳤던 ‘윌리엄 보스 트위드’ 하원의원 사건을 계기로 1870년대 출범했다. 이후 현직 시장 등 고위 공무원의 이해충돌이나 윤리강령 위반 문제를 거침없이 지적해온 것으로 명성이 높다.
현재 조사국을 이끄는 가넷 국장은 2018년 더블라지오 시장이 임명했다. 여성인 가넷은 미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로 유명한 뉴욕 남부연방지검 검사 출신으로 뉴욕주 수석 검찰부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현지 매체들은 “더블라지오가 자신의 측근이라고 생각한 가넷 국장 때문에 주지사 등 정치가도에 타격을 받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