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스가 미국을 망쳤다(The Bobos Broke America.)”

보보스는 20세기 후반 미국 사회에 새로 출현한 상류계층인 ‘부르조아 보헤미안(bourgeois bohemian)’를 일컫는 약자로, 부르조아적 특성인 물질주의‧합리주의‧기술주의와, 보헤미안적인 예술적‧영적 기질과 비(非)합리주의를 함께 지닌 계층을 말한다. 이들은 과거 미국 사회의 엘리트층이 중시했던 성실과 근면성, 신뢰성이란 덕목보다, ‘창의성’을 내세우면서 미국 사회에서 진보적 가치를 육성하고 경제에 새 활기를 줄 것으로 기대됐다. 2001년 국내에도 이들을 다룬 책인 ‘보보스(Bobos in Paradise)’가 소개돼, 큰 주목을 받았다.

자신과 같은 보보스가 미국 사회를 망쳤다는 주장을 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트위터

그런데 ‘보보스’의 저자로 이 단어를 크게 유행시켰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Brooks)는 미 월간지 애틀랜틱 몬슬리 9월호에서 “미국의 대학, 언론, 문화와 교육, 기술을 지배한 보보스는 자기들만의 특권계급을 만들고, 자신들의 ‘엘리트 문화’를 대중에 강요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성적(性的) 취향‧종교‧민족‧장애‧인종 등 갈기갈기 쪼개져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지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판 치고, 한때 노동자들을 대변했던 민주당은 도시에 밀집한 고학력 보보스 엘리트들에 점령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7000달러짜리 샹들리에는 경멸…1만 달러짜리 부엌 스토브는 선호

애초 보보스는 집안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욕구로 명문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은, 20세기 후반의 정보기반 경제가 낳은 신(新)중산층이었다. 과거 애플 광고처럼 “미치고, 적응하지 못하고, 반군 기질이 강한 문제덩어리”들이었다. 2000년 IT 경제가 뜨면서, 돈방석에 앉은 이들은 자신들만의 ‘금융적 올바름’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값비싼 샹들리에는 천박함을 드러내도, 1만 달러짜리 초대형 스토브(stove)는 음식과 요리에 대한 식견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거실 테이블은 공장 바닥에 깔렸던 낡은 목재로 만들어야 하며, 후진국에서 만든 올이 거친 스웨터가 몸에는 적격이었다.

◇보보스만의 ‘특권 계급’ 만들어

자신도 ‘보보스’인 브룩스는 애초 자신의 저서에서 “좋은 학위와 직장, 문화적 능력만 갖추면 누구나 보보스가 될 수 있어서, 보보스는 결코 폐쇄적일 수 없다”고 했었다. 그는 애틀랜틱 몬슬리 기고문에서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오류를 자인했다.

지난 20년간 부모가 된 보보스는 미국의 문화와 언론, 교육, 기술을 지배하면서 자신들을 낳았던 ‘경쟁적 실력주의(meritocracy)’를 독점했다. 이들은 1996년 이후에 자녀 교육비를 300% 올렸다. SAT와 같은 표준화시험을 보면, 고수입 자녀와 빈곤층 자녀의 점수 차는 40~50% 벌어졌다. 예일‧프린스턴‧펜실베이니아‧다트머스와 같은 아이비리그의 2017년 신입생 중 소득 상위 1% 출신이 하위 60% 출신보다 많았다. 보보스족(族)은 또 막대한 부(富)를 창출하는 뉴욕‧보스턴‧워싱턴 DC‧샌디에이고 등과 같은 몇몇 대도시로 이주해, 주택 가격 폭등을 초래했다. 미국에선 이들 창조적 보보스족만이 모여 사는 우편번호가 따로 있다.

◇보보스가 좌익 정당을 지배하며, ‘엘리트 문화’ 강요

창조적인 보보스가 좌파 정당에 들어오면서, 당의 전통적인 기반이었던 노동계층은 떠났다. 2020년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이긴 카운티(county)는 500여 곳에 그쳤지만, 이 지역은 미국 GDP의 71%를 차지했다. 트럼프가 이긴 2500여 개 카운티의 경제 비중은 29%였다. 브루킹스연구소와 월스트리트저널은 “13년 전만 해도 민주‧공화 지역은 부와 소득 면에선 비슷했는데, 이제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사회를 지배한 보보스는 자신들의 ‘엘리트 문화’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50년간 미국 대학과 주류(主流)언론에서 노동계층과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숫자는 매우 드물어졌다. 말로는 관용과 개방, 다양성을 얘기하지만, 보보스는 가치관이 다른 계층과는 대화도 하지 않는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이견(異見)에 가장 적대적이고 당파적인 유권자는 ‘얼굴빛이 가장 하얗고 가장 고등교육을 받은 나이 든 도심 거주자’다. 이들이 사는 가장 배타적인 카운티는 보스턴과 하버드대가 속한 매사추세츠의 서포크 카운티다. 그러나 스스로는 ‘남보다 더 똑똑하고 더 깨어 있고 더 관용적’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최 상층부를 차지한 보보스

민주당에서 가장 높은 층을 차지한 이들은 IT 업계와 언론계의 거물, 대학 총장, 재단 대표, 은행 CEO, 최고 연봉의 의사와 변호사들이다. 지식산업 시대의 주요 기관을 대표하는 보보스들이다.

그리고 그 밑에 이런 기관에서 일하는 지식인층과, ‘깨어 있는 것(wokeness)’이 마치 자신의 사회 신분이라도 드러내는 양 생각하는 젊은 층이 존재한다. 타고난 성(性)과 자신이 느끼는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인 ‘시스젠더(cisgender)’, 이성애(異性愛) 규범성이란 뜻의 ‘헤테로노머티비티(heteronormativity)’, 개인의 사회‧정치적 정체성의 여러 부분이 얼마나 다양한 차별과 특권을 창조하는지를 따지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과 같은 단어들을 즐겨 사용한다. 미국 대중은 알지도 못하거나, 관심도 거의 없는 용어들이다.

◇자기 잇속만 챙기는 보보스족(族)의 ‘깨어있는 자본주의’

민주당의 거대 부호들은 고율의 세금, 재분배 성격이 강한 복지정책, 전(全)국민 건강보험, 녹색 환경 정책을 지지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좌파 지향’적인 것 같다. 그러나 정부 규제나 노동조합 결성, 반(反)독점 정책들과 같이 자기 요람을 흔드는 정책은 철저히 반대한다. 이들이 말하는 ‘깨어있는 자본주의’는 좌파를 ‘물타기’해 자신들의 지속성을 꾀하려는 것이다.

◇ ‘천박한 부르조아(부부)’들의 보보스 반격

반(反)보보스 진영을 이루는 축은 공화당의 상층부 부호들과 거대한 토지를 보유한 중서부의 가구들, 돈벌이는 괜찮은 노동계층, 그리고 ‘이제 자신들은 완전히 잊혔다’고 생각하는 생활 터전이라곤 고향 마을뿐인 저임금 노동계층이다.

공화당의 상류 1% 부호들은 레이건 시절의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다. 축적한 부(富)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공유하면, 미국사회에서 비웃음을 산다고 생각한다. 2020년 미 대선에서 트럼프 쪽으로 많이 돌아섰다. 공화당 토지 소유층과 돈벌이가 괜찮은 노동계층은 ‘픽업트럭’ ‘컨트리 뮤직’ ‘총’ ‘기독교적 미국주의’와 같이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경멸하는 보보스에 분노한다. 작년 6월에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BLM)’ 시위대 행렬이 자신의 정원을 짓밟자 총 들고 위협한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백인 부부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보보스가 강요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반발하지만, 보보스에게 이들은 ‘천박한 부르조아(부부‧boorish bourgeoisie)’일 뿐이다.

작년 6월말, '흑인들의 목숨도 중요하다' 시위대가 자신의 집마당을 밟으며 지나가자, 총을 들고 나온 매클로스키 부부. /시위대가 찍어 트위터에 게재한 사진


◇”보보스의 산실(産室)이었던 실력주의, 갈수록 공허해져”

브룩스는 “학업 성적(명문대 졸업) 위주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며, 이보다는 팀 단위로 일하는 능력, 공동의 선(善)을 위해 희생하는 능력, 친절하고 신뢰를 주는 능력 등이 더 존중돼야 한다”며 “미국의 실력주의는 점점 공허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사회에선 창조적 소수 계층에 대한 대중의 분노만 촉발하고 키우면 돼, 우익 정당들도 지적으로는 빈곤해진다”며 “유일한 해법은 사람들이 분류되는 기준을 확대해 제도적 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보보스는 권력에 취해 재정이나 서로에 대한 존중심에서 막대한 불균형을 초래했으며, 이제 이 체제를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