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주 올버니의 주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한 캐시 호컬(62) 주지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추행 파문으로 중도 사퇴한 앤드루 쿠오모 전 주지사의 임기를 이어받아 뉴욕의 첫 여성 주지사로 취임한 그는 주정부에 대한 주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미국 뉴욕주의 첫 여성 주지사인 캐시 호컬(62)이 24일(현지 시각) 취임했다. 여성 11명을 성추행한 스캔들로 이날 자정 직전 주지사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한 앤드루 쿠오모(63)의 직무를 부지사이던 호컬이 자동 승계했다. 그는 내년 12월까지 쿠오모의 잔여 임기를 수행한다. 내년 11월 주지사 재선에 도전할 예정이다.

호컬은 이날 제57대 뉴욕 주지사에 취임하면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전임자의 각종 스캔들로 추락한 주정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주정부를 다시 믿게 되기를 바란다. 신뢰를 얻는 게 내겐 중요하다”며 “뉴욕 주민들의 주지사로 봉사할 수 있게 돼 자랑스럽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캐시 호컬 신임 뉴욕 주지사는 24일(현지 시각) 취임식에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인 흰 드레스를 입고 나와 “앞서간 모든 여성이 내게 횃불을 넘겨줬다”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뉴욕 주정부의 성·윤리 문화를 바꾸겠다며 “선을 넘는 개인에 대해선 무관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도 했다. 향후 45일 동안 내부 검토를 거쳐 쿠오모 전 주지사의 성추행이나 피해자 공격에 가담한 이들을 퇴출시키고, 모든 직원에게 윤리 교육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 쿠오모가 코로나 방역 성과를 포장하려 요양원 사망자 수를 축소 발표한 데 대해 “전적으로 투명한 행정을 약속한다”고 했다. 쿠오모가 뉴욕시장 등 산하 지자체장들과 잦은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도 “예의와 합의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호컬 신임 주지사는 특히 “내 어머니를 포함, 나보다 먼저 살다 간 모든 여성에 대해 생각했다”면서 “그들이 내게 횃불을 넘겨준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취임식에 호컬 본인과 딸, 며느리는 나란히 흰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다. 흰색은 서구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상징하는 색이다.

나란히 흰 드레스를 입고 선 딸 케이티(왼쪽에서 둘째)와 호컬(왼쪽에서 셋째), 며느리 크리스티나(맨 오른쪽). /AP 연합뉴스

호컬은 대행(代行)이지만 244년 뉴욕주 역사상 첫 여성 주지사다. 현재 미국 50주 중 오리건과 미시간 등 9주에 여성 주지사가 있지만, 뉴욕처럼 인구가 2000만명에 달하는 큰 주에서 여성 주지사가 나온 건 드문 일이다. 특히 이번처럼 남성 주지사의 성폭력과 막말 등 공포 정치가 논란이 된 상황에서 여성 주지사가 취임한 것은 각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호컬은 뉴욕주 버팔로 출신의 중도 성향 민주당원이다. 아버지는 철강 노동자 출신이고 어머니는 자녀 여섯을 키운 전업주부다.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시러큐스대를 졸업하고 아메리카카톨릭대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 하원의원을 지냈고, 2014년부터 쿠오모 전 주지사의 러닝메이트로 뉴욕주 부지사직을 수행했다.

앤드루 쿠오모(왼쪽) 전 뉴욕주지사와 캐시 호컬 부지사가 지난 2015년 함께 각료 회의에 참석한 모습. 호컬은 쿠오모의 러닝메이트였지만 그의 성추행 스캔들이 사실로 밝혀지자 가장 먼저 피해자 편에 서며 등을 돌렸다. /AP 연합뉴스

호컬은 변호사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이번에 쿠오모 전 주지사의 성추행 의혹이 나오자 가장 먼저 “혐오스럽고 불법적인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며 등을 돌렸다. “나는 원고들(피해자들)을 믿는다”고 했다.

호컬 신임 주지사의 취임으로 뉴욕 정치·법조계 수뇌부가 거의 여성으로 채워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현재 뉴욕주 상원의장이자 의회 1인자인 앤드리아 스튜어트-커즌스, 쿠오모 전 주지사의 성추행을 밝혀낸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 재닛 디피오레 뉴욕주 대법원장이 모두 여성이다. 뉴욕주 하원의장인 칼 히스티만 남성이다. 호컬은 주지사직 인수위원회 책임자부터 비서실장, 고문 등 핵심 요직에 모두 여성을 발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