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미 생체 정보 인식 활용 기업인 클리어 시큐어 CEO 등 임원들이 뉴욕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를 하는 날 개장 종을 울리며 환호하고 있다. 뉴욕 증시에서 개장 혹은 폐장 종 타종은 상장 기업들에 큰 영예이자 글로벌 홍보 기회로 인식된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기업들에는 특전이 주어진다. 평일 아침 개장과 오후 폐장 때 큰 종을 울리는 200년 된 전통이 있는데, 그날 데뷔한 기업이 타종할 수 있게 해준다. 기업들은 이때 최고경영자와 임원진, 투자사와 자문사, 연예인 홍보인사 등 수십 명이 객장 내 발코니에 올라가 기업 홍보 현수막 등을 배경으로 개장 타종을 하며 자축한다. 기업으로선 세계적 홍보 기회다.

일러스트=김도원

이 타종 기회를 잡기 위해 요즘 각국 기업들이 ‘하늘의 별 따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 시각) 헤밍웨이 소설 제목에 빗댄 ‘누구를 위하여 (개장) 종은 울리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올 들어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전 세계 기업이 크게 늘면서 개장 타종을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고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에선 올 들어 8월 현재까지 각국 총 600여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되는 기업은 보통 1년에 400개 정도인데, 올해는 7월이 갓 지난 시점에 벌써 예년의 150%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를 평균하면 매주 20개 이상의 기업이 뉴욕 증시에 데뷔하는 셈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자금이 증시에 몰리면서 뉴욕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6월 월스트리트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 도로에서 상장기업 측과 기업들이 다과를 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문제는 타종할 수 있는 날이 증시가 문을 여는 주 5일뿐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오후 폐장 종은 기업공개 첫날 주가가 하락할 경우 표정 관리가 힘들기 때문에 기업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결국 매주 스무 곳 이상의 상장 기업이 단 다섯 자리뿐인 오전 타종 기회를 놓고 뜨거운 경쟁을 벌여야 한다. 뉴욕증권거래소 측은 타종 기회를 미리 확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화제가 되는 쪽을 임박해서야 정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울고 웃는 기업이 적지 않다.

터키의 한 전자상거래 업체는 지난달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수개월 전부터 개장 타종을 위해 뉴욕증권거래소 측에 읍소했는데, 하필 미국의 유명 도넛 업체 크리스피 크림이 같은 날 상장하면서 밀렸다. 미 3D 프린터 업체는 유명 영화배우를 내세운 운동기구 업체의 공세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오후 타종을 해야 했다. 한 영국 전자상거래 기업 회장은 극적으로 오전 타종 기회를 잡았으나 코로나 방역 문제로 미국 입국을 못 하게 되자, 자신의 사진을 담은 입간판을 세워놓고 다른 임원이 종을 치게 했다.

지난 3월 11일 김범석(왼쪽에서 셋째) 쿠팡 이사회 의장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상장 기념 오프닝 벨을 울리던 모습. /뉴시스

타종 형식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1792년 설립 직후엔 개장·상장을 알리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다가, 19세기엔 큰 징을 썼으며 1903년부턴 현재의 종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타종이 전자식으로 변했으며 의사봉도 함께 두드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