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기업들에는 특전이 주어진다. 평일 아침 개장과 오후 폐장 때 큰 종을 울리는 200년 된 전통이 있는데, 그날 데뷔한 기업이 타종할 수 있게 해준다. 기업들은 이때 최고경영자와 임원진, 투자사와 자문사, 연예인 홍보인사 등 수십 명이 객장 내 발코니에 올라가 기업 홍보 현수막 등을 배경으로 개장 타종을 하며 자축한다. 기업으로선 세계적 홍보 기회다.
이 타종 기회를 잡기 위해 요즘 각국 기업들이 ‘하늘의 별 따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현지 시각) 헤밍웨이 소설 제목에 빗댄 ‘누구를 위하여 (개장) 종은 울리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올 들어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전 세계 기업이 크게 늘면서 개장 타종을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다고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에선 올 들어 8월 현재까지 각국 총 600여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되는 기업은 보통 1년에 400개 정도인데, 올해는 7월이 갓 지난 시점에 벌써 예년의 150%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이를 평균하면 매주 20개 이상의 기업이 뉴욕 증시에 데뷔하는 셈이다.
문제는 타종할 수 있는 날이 증시가 문을 여는 주 5일뿐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오후 폐장 종은 기업공개 첫날 주가가 하락할 경우 표정 관리가 힘들기 때문에 기업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결국 매주 스무 곳 이상의 상장 기업이 단 다섯 자리뿐인 오전 타종 기회를 놓고 뜨거운 경쟁을 벌여야 한다. 뉴욕증권거래소 측은 타종 기회를 미리 확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화제가 되는 쪽을 임박해서야 정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울고 웃는 기업이 적지 않다.
터키의 한 전자상거래 업체는 지난달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수개월 전부터 개장 타종을 위해 뉴욕증권거래소 측에 읍소했는데, 하필 미국의 유명 도넛 업체 크리스피 크림이 같은 날 상장하면서 밀렸다. 미 3D 프린터 업체는 유명 영화배우를 내세운 운동기구 업체의 공세에 밀려 울며 겨자 먹기로 오후 타종을 해야 했다. 한 영국 전자상거래 기업 회장은 극적으로 오전 타종 기회를 잡았으나 코로나 방역 문제로 미국 입국을 못 하게 되자, 자신의 사진을 담은 입간판을 세워놓고 다른 임원이 종을 치게 했다.
타종 형식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1792년 설립 직후엔 개장·상장을 알리기 위해 의사봉을 두드리다가, 19세기엔 큰 징을 썼으며 1903년부턴 현재의 종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타종이 전자식으로 변했으며 의사봉도 함께 두드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