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이 전 세계 코로나 백신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지재권) 보호 유예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27일(현지 시각)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백신 특허권 포기 요청에 대해 공식적 언급을 피해왔는데 입장이 조금 바뀐 것이다. 코로나 조기 종식을 위해 ‘백신 부자’인 미국이 배타적 특허권 보호를 포기하고 다른 나라들의 복제품 생산을 허용해야 한다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마스크 벗는 바이든 - 공식 석상에서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왔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백악관 잔디밭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치고 마스크를 벗고 있다. 이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신 접종을 받고 2주가 경과한 사람은 사람이 붐비지 않는 야외 공간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새로운 코로나 방역 지침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지침에 따라 마스크를 벗은 것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특허권 포기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하지만 무엇이 가장 타당한지 평가해 봐야 한다”고 했다. 사키 대변인은 “(미국은 코로나 백신의) 생산을 최대화하고 세계를 위해 가능한 한 제일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이 문제를 보고 있다”면서 “여기(미국)서 (백신을) 제조해서 세계에 공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 지재권 포기도 옵션이 될지 평가해 봐야 한다”고 했다. 사키 대변인은 “미 무역대표부가 그런 권고를 (아직) 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도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틀 연속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 경영진을 잇따라 만났다. 그는 26일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 러드 도버 아스트라제네카 미국지사장과 화상회의를 했고 27일엔 존 트리지노 노바백스 부회장과 화상 대면했다. 무역대표부는 타이 대표가 이들과 “세계무역기구 TRIPs(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의 특정 조항에 대한 포기 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TRIPs는 백신에 대한 지재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공중보건 비상사태 때 회원국 간에 지재권 유예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 타이 대표가 백신 제약사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은 백신에 대한 특허 일시 포기를 논의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백신 지재권 보호 유예 문제를 거론하게 된 것은 거듭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다. 개도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100개 이상 국가와 300여 국제단체가 이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 15일 세계 여러 나라의 전직 국가 정상과 노벨상 수상자 등 170여명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지재권의 완전한 보호와 (백신 생산의) 독점은 세계의 백신 접종 노력에 부정적 영향만 미치고 미국에도 자멸적”이라며 특허권 포기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지난 26일 백악관은 인도에 대한 코로나 지원 방안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미국이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에 대한 지재권과 특허를 포기할 ‘도덕적 의무'를 고려하는지 알고 싶다”는 질문이 나왔을 때 당시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공유할 것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하루 뒤 백악관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시노팜’과 ‘스푸트니크V’를 앞세워 적극적인 백신 외교를 펼치고 있는 것도 미국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27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중남미 9국이 중국 백신을 사거나 계약하려는 중이다. 멕시코 외교장관은 백신을 구하려고 러시아와 만났다.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에 뒤처지고 있는 것 아닌가”란 질문을 받았다. 블링컨 장관은 “최대한 많은 세계인이 최대한 빨리 백신 접종을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허 포기 가능성에 백신 제약 업체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세계 최초로 mRNA 기술을 이용한 백신을 개발해 낸 모더나와 화이자 등은 “특허를 포기하면 신기술을 중국과 러시아에 넘겨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미 정부에 경고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