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전미유대인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코로나 백신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미국이 최후의 결전에 돌입했다.”

한때 최악의 코로나 피해국 신세였던 미국이 최근 전 세계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압도적인 공급 능력 덕분에 전국에 코로나 백신이 넘쳐나고,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백신을 맞을 수 있다. 국제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1일 현재 미국엔 2억회분 이상의 백신이 풀렸고, 이를 통해 전체 인구의 40.2%인 1억3445만명이 한 차례 이상 백신을 맞았다. 성인만 따지면 52%에 달한다. 이런 추세면 오는 6월쯤 집단면역에 도달할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런 미국이 남모르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백신 접종에 무관심하거나 ‘절대 안 맞겠다’고 버티는 기피층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백신 접종률이 눈에 띄게 더뎌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단면역은 인구의 70~90%가 백신을 맞아야 달성되는데 목표를 눈앞에 두고 주저앉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 정부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백신을 맞히기 위한 대대적인 작전에 돌입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은 22일(현지 시각) “미국이 집단면역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머뭇대는 동안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등이 더 빨리 확산될 경우, 그간의 접종 성과마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위기감 속에서 최후의 결전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21일 회견에서 “우리가 지금 손을 놔버리고 경계를 늦추면, 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그간 이룩한 성과를 지워버릴 것”이라며 이 결전을 독려했다.

현재 각 주에선 보건 당국자들과 의회, 기업까지 총동원돼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려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한다. 대도시의 대형 접종소에 스스로 찾아와 백신 맞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동네 구석구석을 훑으며 국민을 한명 한명 찾아가 설득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노숙자 쉼터, 트럭 운전사 휴게소 등에 이동식 접종소를 세우거나, 동네별 주치의들이 주민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접종을 권유하고 해당 의원, 혹은 직장·학교 등에서도 백신을 맞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선거철처럼 자원봉사자들이 집집마다 돌며 백신 홍보를 하기도 한다. 한 보건 전문가는 “미국이 지금까지 백신 접종 희망자들을 상대로 쉬운 ‘공중전’을 펼쳤다면, 지금부터는 지상으로 내려가 노동집약적인 ‘백병전(hand-to-hand combat·총검과 몸으로 싸우는 육박전)’에 진입한 셈”이라고 말했다.

미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자주색 코트)가 지난 21일 뉴멕시코의 코로나 백신 접종소를 찾아 시민들과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와 주별 보건당국, 기업까지 인구 70% 이상이 백신을 맞아 집단면역을 달성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AFP 연합

미국 사회가 주목하는 백신 기피층으로 우선 흑인과 히스패닉이 꼽힌다. 이들은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데도 백신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흑인은 과거 미 정부가 흑인들에게 비윤리적인 매독 생체 실험을 했던 전례가 있어 백신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한다.

미 CDC가 주별로 백신을 최소 1차례 이상 맞은 성인 비율을 집계한 자료를 토대로 만든 지도. 민주당 지지 주들에선 40~50%대에 달하지만, 중남부 등 공화당 지지 주들에선 30%대에 머물거나 그 아래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춘

농촌 지역의 극우·보수 성향 저학력 백인들도 강력한 백신 저항 세력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집계에 따르면 현재 뉴욕·캘리포니아 등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blue states)에서 백신을 맞은 성인 비율은 50~60%에 육박한다. 하지만 텍사스·미시시피 등 중남부의 공화당 텃밭(red states)에선 30% 안팎에 불과하다. 이런 주들은 당국이 백신을 더 보내려 해도 “백신 소진이 안돼 극저온 냉동고가 아직 꽉 차있다”며 백신을 보내지 말라고 호소한다고 한다.

NYT 조사에 따르면 전국 500개 카운티(주 아래의 행정 단위)의 백신 접종률을 조사했더니,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투표한 비중이 높을수록 접종률이 떨어지는 상관 관계가 명확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과학과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 여파”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 백신의 해외 지원과 관련 “(앞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해외로 보내는 걸 확신할 만큼 충분히 갖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집단 면역에 도달하기까지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다른 나라에 대한 백신 지원도 가능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