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내각 회의 - 조 바이든(가운데) 미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토니 블링컨(왼쪽)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오른쪽) 국방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북한과 중국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의와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계기로 가시화되고 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출국하면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을 위해 중국과의 협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과 몇 시간 전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대중 견제를 위한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국 연합체 쿼드(Quad)에 “한국의 참여를 언제든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화 재개에 사활을 걸고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며 이 전선에 합류하라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현지 시각) 전화 브리핑에서 “(쿼드에 관해) 한국 친구들과 매우 긴밀히 협의해 왔다. 우리가 (쿼드에서) 시작한 (신흥) 기술 실무그룹 같은 몇몇 이니셔티브에 비공식 참여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참여 요청이 없었다며 쿼드 참여 여부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다. 그런데 미국 측이 참여 요청을 했다는 그간의 협의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이 당국자는 이어 “한국 친구들과의 더 긴밀한 협의나 참여를 언제든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3일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한국의 쿼드 참여를 공개적으로 독려한 것이다. 미국이 형성하려는 ‘민주주의 국가 연합’에서 한국을 떼어내려는 중국에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 바이든 미국 대통령,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연합뉴스

이날 브리핑은 2일(현지 시각)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리는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의를 하루 앞두고 열렸다.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 고위 당국자는 우선 “쿼드는 비공식적 그룹이고 열린 구조이며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데 관심 있는 유사한 생각을 지닌 국가들을 모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한국이 ‘비공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쿼드 자체가 조약 같은 법적 구속 없이 만들어진 비공식 그룹이므로 한국의 참여에 제약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최종적 비핵화 전 선(先) 종전 선언’에 대해서도 미국은 “대북 정책의 중심은 (북한의) 비핵화”라며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날 미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이 대북 대화 재개를 위해 종전 선언 노력을 기울이자고 촉구하는데 (한·미·일) 회의 결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변경 또는 수정될 수 있나”란 질문이 나왔다.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3국 회의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이를 제안할 텐데 수용할 뜻이 있냐고 물은 것이다.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미국 대북 정책의 중심에 비핵화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했다. 대북 대화의 재개 그 자체보다 실질적 비핵화가 중요하며, 한국이 종전 선언을 재촉해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뜻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번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의에서 종전 선언 추진을 설득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과 미국의 입장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한미 당국은 이르면 4월 중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