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의 의회에서 지난 2월 회의가 열려 실무진이 줌으로 참석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런 줌회의가 전 세계에서 갑자기 '일상'이 되면서 많은 이들이 피로와 탈진을 호소하고 있다. /AP 연합

코로나로 1년 넘게 대면 접촉이 줄면서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게 줌(zoom) 같은 온라인 화상회의다. 하루에도 전 세계 수억명이 줌에 접속해 수업과 회의, 결혼식을 한다. 하지만 줌이 일상이 되면서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정신·신체적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줌 피로(zoom fatigue)’ ‘줌 번아웃(burnout·무기력·탈진 상태)’ 같은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그런 문제 때문에 글로벌 금융사인 시티그룹은 26일(현지 시각)부터 세계 21만명의 직원들을 상대로 ‘줌회의 없는 금요일(Zoom-free Friday)’을 도입했다. 주중 하루만이라도 화상회의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최고경영자는 최근 사내 메모에서 “팬데믹으로 일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지고 업무 시간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우리의 건강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며 “전 세계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니 ‘줌 피로’부터 타파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했다.

시티그룹은 작년 8월 고객사의 채권 금융사들에 이자 80만달러를 보내려다가 실수로 원금까지 더해 총 9억달러(1조원)를 보낸 초대형 송금 사고를 냈다. 반환 소송에서 패소해 이 중 절반은 돌려받지 못했다. 당시 사고 원인은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결함’로 알려졌으나, 내부적으론 장기간 재택 근무로 업무 시간이 늘고, 잦은 화상회의로 직원들의 피로가 누적됐다는 점이 근본 원인으로 지적됐다.

‘줌 피로'는 왜 생기는 것일까. 지난달 미국 스탠퍼드대 인지심리학과 제러미 베일렌슨 교수팀이 ‘비언어적 부담:줌 피로 원인에 대한 이론적 논의’란 논문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논문에 따르면, 우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시선(eye contact)을 받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줌에선 한 화면에 여러 참석자가 동시에 등장, 모두가 모두를 주시하게 된다. 통상 사람은 자신에게 잠시만 이목이 쏠려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줌에선 이 스트레스가 모든 이에게 장시간 가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모니터에서 상대 얼굴이 크게 부각되면, 뇌는 이를 ‘짝짓기 또는 전투를 벌이자'는 비상 신호로 인식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줌 회의 모습. 말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연단에 선 연사처럼 타인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고 피로한 느낌을 받게 된다. 보디랭귀지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피로의 큰 원인이다. /로이터

줌 화면에 자기 얼굴이 거울처럼 계속 비치는 것 역시 감정적으로 큰 부담을 준다고 한다. “내가 줌에서 너무 늙어 보이더라”는 미 여성들이 늘면서 성형 시술 붐이 일기도 했다. 꼼짝없이 앉아 한곳을 응시하는 자세도 인지 판단 능력을 떨어뜨린다. 또 서로의 표정과 말에만 집중해야 하는 줌의 특성상, 다양한 신체 언어(body language)를 활용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상대에게 동의를 표하려 고개를 크게 끄덕이거나 엄지를 치켜올리는 등 과장된 제스처를 동원하다 쉽게 지치게 된다고 한다.

줌 회의를 계속하다 쓰러진 학생 또는 직장인 때문에 출동한 구급대가 "줌 피로가 심각할 뿐"이라고 말하는 내용의 미 풍자 만화. /리워크
지난해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만평. '줌 피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사람들이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게 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산타크루즈센터니얼

스탠퍼드 연구팀은 “줌 화면 크기를 줄이고, 가능한 한 모니터에서 떨어지라” “자기 모습이 비치는 비디오 기능을 꺼라” “몸을 움직이며 회의를 들으라” 같은 대안을 제시했다. 의사들은 장시간 스크린을 보는 데서 오는 피로를 줄이기 위해 “수시로 먼 곳을 보며 눈의 피로를 풀라” “산책하라” 같은 조언도 한다.

그러나 이런 줌 피로 완화법은 큰 의미가 없고, 대면 활동을 정상화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미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코로나 백신 보급과 함께 등교·출근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도 ‘줌 피로’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뉴욕시는 오는 5월부터 모든 공무원에게 다시 출근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