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하비에르 베세라 보건장관,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과 이민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밀려드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로 미국 남부 국경이 초토화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현재 미·멕시코 국경 지대인 텍사스 일대엔 정부가 관련 인력과 예산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로 불법 이민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한 달간 중남미에서 온 10만여명이 불법 월경을 시도했는데 이는 1월보다 30% 증가한 수치다. 홀로 입국해 추방하지 못하고 일시 구금한 중남미 미성년자도 1만4000명에 달한다. 이 미성년자 수용을 위해 컨벤션센터와 호텔까지 동원하고 있다. 바이든이 대선 과정과 취임 초 불법 이민에 대해 취했던 온정적 조치와 발언들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해지자 바이든은 24일(현지 시각)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남부 국경 밀입국 문제 책임자로 지정했다. 해리스에게 불법 이민 주요 송출국인 멕시코, 그리고 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 등 ‘북부 삼각지대’ 국가를 상대로 불법 이민을 줄일 근본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외교 협상역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앞서 바이든은 이민 주무 부처인 국토안보부와 보건복지부 장관을 모두 히스패닉계로 임명하고, 멕시코 등에 순회 특사를 파견하는 등 불법 이민 문제를 ‘친절한 외교’로 돌파하려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최근 바이든 정부는 ‘멕시코에 코로나 백신 보급률이 낮아 경제 침체를 면하지 못하다 보니 이탈자가 많이 생긴다’는 판단에서 미국에서 남는 백신을 무상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진보 언론들조차 “어떤 조치도 먹히지 않고 있다. 이미 너무 늦었다”(CNN) “이제 와 부통령을 투입한다고 해서 나아질 상황이 아니다”(워싱턴포스트)라고 하고 있다.

미국에 밀입국하려는 중남미인들이 지난 17일 멕시코 국경 인근에서 난민 심사를 기다리며 머무르는 텐트촌을 상공에서 촬영한 모습. /AFP 연합

이렇게 된 근본적 원인은 중남미 좌파 국가들의 경제 실패와 치솟는 범죄율 때문이다. 멕시코에선 주로 일시적 일자리를 찾는 남성 가장들이, ‘북부 삼각지대’와 베네수엘라 등에선 극심한 빈곤과 마약 갱단의 폭력, 정치 보복을 피해 도망치는 가족 단위 난민이 많다. 미국 경제가 좋을수록 중남미 이민도 폭증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1990년대 이래 계속 심화한 현상이다. 이 때문에 빌 클린턴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모든 대통령이 남부 국경 장벽을 쌓으며 불법 이민에 단호한 태도를 취해왔다.

유독 바이든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는 그가 중남미인들에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국경이 열리겠구나’란 착각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남미 이민자들을 “강간범”으로 부르고 어린이들에 대한 비인도적 구금·추방 조치를 취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그가 비판하고 인권을 강조하면서 생긴 일이다. 실제 바이든은 취임 직후 트럼프의 국경 장벽 건설을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미국 망명 신청자들을 일단 멕시코에 대기하도록 하는 트럼프 정부의 방침도 폐기했다. 1100만명에 달하는 미국 내 불법 체류자들에게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시민권을 주는 이민법 개정안도 최근 하원을 통과했다.

안드레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조차 23일 “현 국경 위기는 ‘바이든이 더 나은 대우를 해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미성년자에게 온정적인 바이든 정부를 보고 중남미 부모들이 어린 자녀만 밀입국시키려는 경우가 급증했다고 한다.

미 텍사스 도나 지역의 국경 지역에 중남미 출신 불법 미성년자 밀입국자들을 임시 구금한 수용소 풍경. /US 세관 및 국경 보호소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대안도 없이 트럼프 정책을 다 뒤집으려는 바이든의 오판이 재앙을 불러왔다고 맹공하고 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최근 정부가 미성년자들이 비닐 담요를 덮고 새우잠 자는 수용소 실태에 대한 언론 취재를 막은 것에 “인권 내세우더니 위선 떨고 있다”고 했다.

뒤늦게 바이든은 연일 중남미를 향해 “미국에 오지 말라, 당신의 고향을 떠나지 말라”면서 미 국경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중도층 여론을 의식해 강경책으로 선회하기도 쉽지 않다. 자칫하면 이민자 인권 탄압으로 진보 여론이 분노할 수도 있고,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히스패닉 유권자의 반감을 살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불법 이민 문제가 바이든 정권의 가장 민감하고 복잡한 정치적 복병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