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서부 콜로라도주(州)의 한 대형 마트에서 총격으로 최소 10명이 숨지는 참사가 22일(현지 시각) 발생했다. 지난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한국계 여성 4명을 포함한 8명이 총기 난사로 희생된 지 6일 만에 대형 총격 사건이 또 일어나면서 미국이 충격에 빠졌다.
경찰과 CNN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30분쯤 로키 산맥에 둘러싸인 콜로라도주 북부 자치도시 볼더의 ‘킹 수퍼스’ 식료품점에 AR-15 소총을 든 한 남성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범인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아무 말 없이 맨 앞에 있던 여성을 쏘고, 안팎으로 총을 10여 발 쐈다고 한다.
순식간에 식료품점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지만, 마트 입구와 주차장에서도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장 먼저 현장에 진입한 에릭 탤리(51) 경관도 총에 맞아 사망했다. 탤리 경관은 일곱 살 막내를 포함해 자녀 7명을 둔 가장이다. 23일 오전 현재 다른 사망자들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재럿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는 “우리는 오늘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은 특수기동대(SWAT)와 헬기, 연방수사국(FBI) 덴버 지부 요원들을 투입해 1시간여 대치 끝에 총격범을 체포했다. 오후 3시 30분쯤 턱수염이 난 중년 백인 남성이 상의가 벗겨지고 피가 흐르는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수갑을 뒤로 찬 채 경찰에 끌려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범인은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단독 범행인지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밤 트위터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콜로라도 총격 관련 브리핑을 받았으며, 추가 상황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CBS는 이날 일부 손님들이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이곳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한 시민은 “딸과 사위, 손주들이 ‘킹 수퍼스’ 내 약국에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갔다고 문자를 보냈다”며 “딸 가족은 총격을 피해 1시간 동안 매장 내 벽장에 숨어있었다”고 CBS에 말했다. 미국에선 대형 약국 체인이나 대형 마트 내 약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코로나 검사도 하고 백신도 접종한다. 이 때문에 총격범이 코로나 백신에 반감을 가진 음모론 추종자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극우 음모론 단체들은 “백신을 맞으면 DNA(유전자 정보)가 변형된다” “백신 맞으면 빌 게이츠(글로벌 백신 보급에 나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전 회장)의 노예가 된다”는 내용을 소셜미디어에 퍼뜨려왔다.
미국에선 지난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한국계 4명 등 총 8명이 숨진 대형 총격 사건 이후 총격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17일엔 캘리포니아 스톡턴, 18일엔 오리건주 그리셤 등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20일에는 휴스턴·댈러스·필라델피아 등 3개 도시에서 동시에 총격 사건이 발생해 총 19명이 총에 맞았고 이 중 1명이 숨졌다. 16일부터 일주일 동안 총 7건의 총격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총격 사고가 잇따르면서 바이든 정부와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총기 규제론이 다시 거세게 일 전망이다. 볼더시는 2018년 17명이 사망한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무기 소지 금지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달 초 주 지방법원은 수정헌법 2조에 보장된 총기 보유권을 들어 이 법을 시행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011년 애리조나 투손의 식료품점 총기 난사 사건 때 머리에 총을 맞은 뒤 기적적으로 살아난 개브리엘 기퍼즈 전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왜 이런 비극이 계속돼야 하는가. 10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총기 규제를 위해 행동을 취할 때가 한참 지났다”고 말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상원은 총기 폭력의 확산을 막을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