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퇴임 후 당의 진로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는 미국 공화당이 한밤중에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고 갈등 수습에 나섰다. 갈등의 중심엔 트럼프에 대해 극과 극의 입장을 취했던 두 여성 하원의원이 있었다. 트럼프 탄핵안에 찬성한 리즈 체니(54) 하원의원,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로 극우 음모론을 제기한 마저리 테일러 그린(46) 하원의원이 그들이다.
공화당은 3일(현지 시각) 오후 10시까지 약 5시간 동안 의원총회를 열고, 체니 의원의 의총 의장직 박탈 여부를 논의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로 공화당 3인자인 체니가 지난달 13일 하원의 트럼프 탄핵소추안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며 반란을 이끈 데 대해 친(親)트럼프 의원들이 ‘배신죄’를 물은 사안이었다. 탄핵 당시 공화당 의원 대부분이 반대했기 때문에 이날 체니 징계안도 가결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이날 마라톤 토론 끝에 나온 투표 결과는 의외였다. 반대 145명, 찬성 61명으로 큰 표차로 부결됐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이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의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일부러 비밀투표에 부쳤다고 한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의원들 사이에선 “양심에 따른 선택을 처벌할 순 없다” “당의 자산인 체니를 징계하면 ‘트럼프 당’이 돼버린다”는 의견이 많았다. 앞서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우리가 단합해야 내년 중간선거에서 다시 하원을 탈환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결국 다수 의원이 당을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체니 징계안 투표 직후엔 그린 의원이 나서 의원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힐 신은 트럼프’로 불리는 그는 극우 음모론 ‘큐어논(QAnon)’ 신봉자로 대선 불복 운동을 주도하면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인사들을 죽이자고 선동한 전력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공화당 내에서도 징계 요구가 일었으나 그린은 “트럼프 대통령이 날 지원한다”며 버텼다. 그러나 그는 이날 매카시 대표와 면담 끝에 “동료 의원들을 난처하게 해 죄송하다”며 “음모론 관련 발언을 한 것은 잘못됐다”고 했다고 한다.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쳐줬다.
다만 그린 의원은 하원 전체회의에선 징계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4일 그린을 교육노동위원회와 예산위원회 업무에서 배제하는 안을 투표에 부친다. 학교 총기 참사를 ‘민주당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던 그를 교육위 등에서 활동하게 놔둘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