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부정’을 주장하며 불복을 이어가는 가운데 그의 가장 충성스러운 참모이자 선거 관련 수사의 칼을 쥔 윌리엄 바(70) 법무장관이 결국 등을 돌렸다.
바 법무장관은 1일(현지 시각) AP통신 인터뷰에서 “연방 검사들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트럼프 대통령 측으로부터 접수된 고소와 정보를 추적했지만, 지금까지 선거 결과를 바꿀 만한 규모의 사기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측 요구에 따라 대선 후 한 달 가까이 검찰과 수사기관을 동원해 선거 사기 수사를 지휘해왔다.
그는 이날 트럼프 캠프가 제기한 대선 부정 음모론의 핵심인 ‘도미니언 개표기 조작설’에 대해 “선거 결과를 왜곡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국토안보부와 법무부 조사에서 그를 입증할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 의혹은 30주(州)에 개표기를 보급한 미국 도미니언사가 베네수엘라 등 사회주의 정권과 연계돼 있으며, 그 소프트웨어가 조 바이든 당선인에게 유리하게 사전 조작됐다는 설이다.
바 장관은 일부 우편투표가 마감 기한을 넘겨 접수됐거나, 투표 무자격자가 투표해 무효라는 논란에 대해서도 “고발 내용 대다수가 특수한 경우로, 조직적인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뭔가 마음에 안 들면 ‘검찰이 수사하라’고 하는, 형사법 만능주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면서 “범죄 여부를 조사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바 장관은 누구보다 트럼프의 충복(忠僕)이었다. 트럼프도 지난 2년여간 그를 “우리의 위대한 법무장관”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때문에 그의 이날 발언은 미 언론들이 ‘돌변’ ‘배신’으로 표현할 만큼 극적 반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내통 의혹을 수사한 뮬러 특검 보고서를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요약 발표했고, 의회의 트럼프 탄핵 시도 때도 철저히 트럼프 편에 섰다. 4년 전 대선 때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으로 유죄가 선고된 트럼프 최측근 로저 스톤과 마이클 플린 사면을 주도한 것도, 이들을 수사한 뉴욕 남부지검장을 경질한 것도 그였다. 이 때문에 그는 ‘법무부를 트럼프의 변호팀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그가 트럼프에게 일격을 가한 이유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한 정치평론가는 CNN에 나와 “트럼프 패배가 공식화되자 법률가로서 평판을 지키고 법무부 내 혼란을 정리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지난달 2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선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며 “법무부와 FBI가 선거 사기의 일역을 담당했을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바 장관이 분노했다고 전했다. 바 장관과 은밀히 소통해온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가 그를 내세워 트럼프 불복 사태를 끝내려 한다는 말도 나왔다.
이번 일로 바 장관이 전격 경질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대선 이후 자신에게 반기를 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선거 사기 의혹을 반박한 크리스토퍼 크레브스 국토안보부 사이버인프라보안국 국장 등을 해임했다. 1일 인터뷰 보도 후 바 장관은 트럼프와 백악관에서 2시간 넘게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한 달을 맞은 현재 트럼프의 불복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줄어들고 있다. 트럼프가 패배해 재검표 등을 요구한 핵심 경합주 6곳은 1일까지 모두 바이든 당선을 최종 인증했다. 우편투표를 인정하지 말라는 소송 수십 건은 모두 1심 패배했고, 상급심에서도 속속 기각되고 있어 연방대법원까지 갈 가능성도 희박하다. 오는 14일 각 주는 전체 투표 결과를 기반으로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공식 선출한다. 바이든이 선거인단 306명, 트럼프가 232명을 확보한 결과가 그대로 추인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