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0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하는 모습을 영국 총리실이 공개했다. 그러나 바이든이 미국의 가장 오랜 동맹인 영국의 입지를 감안해 존슨과 통화했을 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바이든 측은 존슨과 악연이 깊다. /영국 총리실 제공

미국 대통령에 조 바이든 당선이 확정되면서 미국의 가장 오랜 우방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껄끄러운 처지가 됐다고 뉴욕타임스(NYT)와 가디언 등 영미 언론들이 10일 보도했다. 바이든이 존슨의 핵심 정책인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할 뿐 아니라, ‘영국의 트럼프’ 소리를 듣는 존슨의 막말 때문에 악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존슨은 런던시장이던 2016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브렉시트에 반대하자 언론 기고문에서 “오바마는 백악관 집무실의 윈스턴 처칠(영국 전 총리) 흉상을 치우고 마틴 루서 킹(흑인 인권 운동가)을 들여놓았다”며 “대영제국을 싫어하는, 부분적으로 (영국 식민지였던) 케냐인인 대통령으로선 그럴 만하다”고 했다.

/일러스트=박상훈

이에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한 오바마 정부 인사들이 격노했다. ‘오바마는 미국 태생이 아니어서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의혹을 제기한 도널드 트럼프 주장과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존슨은 트럼프의 최대 정적(政敵)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향해서도 “레이디 맥베스(권력욕으로 파멸한 셰익스피어 비극의 인물)” “정신 병원의 가학적 간호사 같다”고 막말을 했다.

지난 8일 존슨 총리가 바이든 당선을 축하하는 트윗을 올리자,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을 지냈던 토미 비에터가 존슨을 비난하는 트윗을 올린 데는 이런 악연이 깔려 있다. 그는 “이 혐오 인물의 표변 또 시작됐네. 당신이 오바마에게 가한 인종차별, 트럼프에게 한 충성 맹세 절대 안 잊어”라고 했다. 영국 내 존슨 반대파에선 “바이든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영국 대사로 임명해 존슨을 코너에 몰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유엔 총회에서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CNN은 바이든이 사석에서 “존슨은 외모나 정서적으로나 트럼프 복제품(clone)”이라고 했으며, 존슨의 최측근 참모인 도미닉 커밍스를 “트럼프의 극우 책사 스티브 배넌 같은 인물”로 지목했다고 전했다.

바이든은 브렉시트가 동맹 관계를 훼손하는 데다, 트럼프 같은 극우 포퓰리스트가 부추긴다는 점에서 반대해왔다. 존슨은 트럼프의 후원 속에서 브렉시트를 밀어붙여 총리까지 됐고, 최대 시장인 미국과 별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바이든의 당선으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10일 바이든 당선인이 유럽 정상 중에선 존슨 총리와 가장 먼저 통화했다면서 “불안해하는 영국을 일단 안심시켰다”고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트위터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낸 축하 메시지 배경에 희미하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었던 메시지 흔적이 남아있다./트위터

존슨이 바이든과 통화는 했지만 ‘난감한’ 상황도 벌어졌다. 존슨이 8일 올린 바이든 축하 트윗 배경에 희미하게 ‘트럼프’ ‘임기(term)’ ‘미래’ 같은 글씨가 나타난다며, 존슨이 트럼프 승리 축하 메시지를 먼저 써놓은 것 같다고 AP통신이 보도한 것이다. 바이든에 대한 메시지 속 글씨보다 숨은 글씨의 글자 크기가 더 작았는데, 이에 대해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존슨이 트럼프에게 더 긴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임기’라는 단어가 ‘두 번째 임기(second term)’ 즉 재선을 가리킨다고 봤다.

영국 정부는 “미 대선이 박빙 대결이어서 두 가지 메시지를 준비했는데, 기술적 문제로 배경이 겹쳐 나왔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