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의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플로리다 주(선거인단 29명)만 이겼어도, 아직도 개표 중인 주(州)들의 결과와 상관없이 미 대선은 바이든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플로리다는 중남미 출신인 라티노(Latino)들이 전체 유권자의 20%를 차지하는 곳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다음날인 4일(현지시간) 새벽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연설을 마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며 선거 결과에 대해 "경이롭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CNN 방송 출구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플로리다에서 라티노 유권자들로부터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아냈다. 2016년 대선 때(35%)보다도 더 높은 비율이었다. 결국 라티노 덕분에, 트럼프는 2016년에 이어 플로리다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트럼프의 텍사스 승리에도 ‘라티노 도움’이 컸다. 트럼프는 더 나아가 ‘접전 주’들에서도 지난 대선 때보다 더 많은 라티노 표를 얻었다. 조지아(트럼프 우위·접전) 주의 라티노는 2016년 대선 때 40%가 민주당을 찍었지만 이번엔 16%에 그쳤다. 오하이오 주(트럼프 승리) 라티노의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율도 2016년 41%에서 올해는 24%로 급감했다.


◇"중남미서 강간범·마약밀매꾼 몰려 온다"는 트럼프를 왜?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전체 유권자의 13%(3500만 명·백인 다음)를 차지하는 라티노 유권자들로부터 최대 36%까지 지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부터 “멕시코 국경을 통해 강간범·마약밀매꾼·범죄자들이 불법 밀입국한다”며 중남미 국가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부모를 따라 밀입국한 아이들을 강제로 부모에게서 떼어내 따로 장기간 수용한 사람이 트럼프다. 한마디로, 1960년 이래 가장 반(反)라티노적인 대통령이다.

그런 트럼프를 중남미 출신 미 유권자의 3분의 1이 지지한 이유는 뭘까. 중남미 각국에서 온 그들을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USA 투데이는 “라티노의 트럼프 지지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가장 특이한 현상”이라고 평했다.

◇라티노들 “진보주의가 고국에 뿌린 재앙” 잘 알아

플로리다의 경우, 공산주의 쿠바에 반대하는 보수적 쿠바계 미국인들 외에, 베네수엘라·니카라과·콜롬비아계 라티노들이 대형 공동체를 이룬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들 공동체는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를 갖는데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이 사회주의에 공감하는데다, 트럼프가 바이든과 민주당을 사회주의로 묶는 전략을 펴 주효했다”고 봤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도 “중남미인 대부분은 진보주의(liberalism)가 고국에 뿌린 사회주의 재앙을 피해 온 사람들이라서, 당연히 민주당의 좌파 정책에 반대한다”고 분석했다. 또 이들은 개신교와 가톨릭에 뿌리를 둔 신앙심이 강하다. 그래서 카멀라 해리스 연방 상원의원(부통령 후보)과 같은 민주당 내 좌파가 미국에 ‘낙태의 물결’을 일으킬까 봐 반대한다. 미국 내 라티노 공동체에서도 전통적 ‘마초’ 이미지는 소멸하는 형편이라, 트럼프의 ‘강한 남자’ 이미지가 표심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USA 투데이의 한 라티노 칼럼니스트는 “라티노 공동체에서 표의 결정권은 여성(라티나)에 있다”고 반박했다.

◇많은 라티노는 자신을 “백인”으로 간주

게다가 많은 라티노는 자신들을 ‘백인(white)’으로 간주하지, 유색인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5월말 이후 전(全) 미국을 휩쓴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나,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 비판에도 덜 공감한다. 물론 미국 라티노 유권자의 3분의 2는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보수적’ 민주당원들이다. 그래서 USA 투데이는 “미국 민주당이 ‘경찰 해산’ ‘경찰 예산 삭감’을 떠들고 방화·약탈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을 포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그들은 라티노들의 마음을 떠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티노 지지를 당연시했던 민주당

그런데도, 민주당은 마치 ‘화석화(化石化)’한 기관처럼, 그저 라티노들이 ‘야비한 공화당’을 피해 자신들에게 보호를 요청할 것으로 생각했다.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1994년 캘리포니아에선 불법이민자 자녀들에게 교육·의료 제공 등 일체의 사회적 서비스를 금지하는 ‘주민제안 187호(Proposition 187)’가 가결됐다. 이 제안은 1997년 위헌(違憲) 판결이 났지만, 라티노를 비롯한 소수계 이민자들의 반발은 거세게 일었고, 이후 공화당 대통령 닉슨과 레이건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주는 ‘영원히’ 민주당 손으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이런 위기의식과 불안감이 선거 때 라티노의 마음을 잡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플로리다에서 판세를 바꾸는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를 형성하기엔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