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조지아주에서 사전 투표가 시작된 12일 유권자들이 투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11시간 기다려 투표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AP 연합뉴스

미국 대선을 3주 정도 앞둔 지난 12일(현지 시각) 조지아주 콥카운티. 사전 현장투표 첫날인 이날 투표소 문을 열기 전부터 유권자 수천 명이 장사진을 쳤다. 한 70대 흑인 여성은 언론 인터뷰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 꼭 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간이 의자를 갖다 놓고 11시간을 기다려 한 표를 행사한 이들도 있었다. 13일 사전 투표가 시작된 텍사스에서도 새벽달이 떠 있는 오전 5시부터 인파가 몰렸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점심으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어가며 8시간을 기다려 투표했다.

미국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각 주(州)의 사전 현장 투표에 기록적인 규모의 유권자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워싱턴포스트(WP)와 AP통신, 폭스뉴스 등이 전한 모습이다. 미 선거 자료를 분석하는 민간 단체 ‘미국 선거 프로젝트(US Election Project)’는 지난달부터 시작된 주별 사전 투표에 나선 전국 유권자를 14일(현지 시각)까지 1500만여 명으로 집계했다. 이는 통상 같은 시점의 사전 투표자 수보다 주별로 2~7 배 폭증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사전 투표소를 연 주는 20여 곳이다. 이 추세라면 올해 미 대선 투표의 과반이 사전 현장 투표와 우편투표를 포괄하는 개념인 사전 투표로 채워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유권자 과반이 선거일 이전에 투표를 완료하는 것은 미 선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WP는 전했다.

미국 조지아주 사전 현장 투표 첫날인 12일(현지 시각)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투표를 하려는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각 주의 사전 현장 투표에 기록적인 규모의 유권자들이 쏟아지면서 미국 언론들은 이번 대선이 다음 달 3일 선거 당일 이전 유권자 과반이 사전 투표하는 선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코로나 여파로 우편투표가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은 그간 많았다. 우편투표는 각 주 선관위가 등록된 유권자들에게 우편으로 투표용지를 보내고 기표된 용지도 우편으로 받아 집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우편투표보다는 사전 현장 투표가 대세일 것이란 관측이 늘고 있다. 애리조나와 조지아주 선관위 당국은 WP에 “우편투표를 신청했다가 취소하고 현장 투표로 바꾼 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불복의 근거로 ‘우편투표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자, 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우편투표 대신 사전 현장 투표로 발을 돌리면서 빚어진 현상으로 분석된다. 이 때문에 사전 현장 투표 열기가 민주당 지지자들의 ‘트럼프 분노 투표’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 선거 프로젝트’는 이번 사전 투표에 나온 유권자들의 지지 정당을 추산했을 때 민주당이 공화당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대 경합 주인 플로리다의 경우 통상 사전 투표에선 공화당 지지층의 투표율이 앞섰는데, 이번엔 14일까지 민주당 쪽 유권자가 38만명 더 투표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미 텍사스주에서 사전 투표 첫날인 13일 투표 차례를 기다리는 유권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유권자들이 많이 택해온 우편투표가 올해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자, “우편투표는 사기” “우편투표 집계가 늦어져 대선 결과가 나오는데 몇 주, 몇 달이 걸릴 수 있다”고 공격했다. 그는 11월 3일 대선일 개표에서 자신이 우세한 결과가 나오면 승리 선언을 해버리고, 이후 집계된 우편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소송전을 벌일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또 트럼프는 자신을 지지하는 극우 무장 단체를 향해 “투표소를 잘 감시하라”고 언급, 대선 당일 무장 세력이 유색인종 등의 투표를 억압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등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마스크 쓰고 운동화 신고 미리 투표하라”고 사전에 현장 투표할 것을 독려해 왔다. 2016년 대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를 훨씬 앞서자 민주당 지지층은 클린턴의 승리를 낙관해 대거 투표를 하지 않았고, 이는 트럼프의 승리로 이어졌다. 올해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를 최근까지 10%포인트가량 앞서고 있다. 4년 전과 비슷하지만 올해는 높은 사전 투표율 때문에 힐러리 패배 때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우편투표보다 개표 절차가 단순한 사전 현장 투표 비율이 늘면서 주별 개표 결과도 예상보다 빨리 집계될 전망이다. 경합 주인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당국은 14일 “대선 당일 밤 결과 발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민주당 측은 사전 투표 열기에 반색하면서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선 당일 투표장에 쏟아져나올 것”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