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미 상원 법사위의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 청문회에선 미 연방대법원이 1973년 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한을 인정한 ‘로(Roe) 대 웨이드’ 판결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민주)은 배럿 지명자가 태아의 생명 존중론자인 것을 겨냥해, “이 판결이 대법원이 계속 바뀌어도 결코 뒤집어지지 않을 ‘수퍼 판례(super precedent)’에 해당하느냐”고 물었다. 배럿은 ‘수퍼 판례’의 정의(定義)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며 “수퍼 판례에 해당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번복돼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고 답했다.

1989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여성의 낙태권 선택을 옹호하는 집회에 참가한 '제인 로' 노마 매코비/위키피디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 연방대법원이 개별 주(州)가 낙태를 금하는 것은 위헌(違憲)이라고 판결해, 여성의 선택권(pro-choice)'을 인정한 기념비적인 판결이었다. 당시 원고인 노마 매코비는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으로 소개됐고, 이 사건을 연방 대법원에 상고한 텍사스주 지방 검사가 헨리 웨이드(Wade)였다. ‘로 vs. 웨이드’란 소송 이름은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이 막대한 사건의 주인공 노마 매코비는 평생 불투명한 삶을 살았다. 판결이 있고 20년 뒤인 1995년부터 그는 낙태금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낙태권을 인정한 버락 오바마에게 “아기들을 살해한다”고 비난했다. 2009년 7월 낙태권 옹호론자인 소냐 소토마이어 대법관의 상원 인준청문회장에선 “당신이 틀렸다”고 고함을 질러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이후 미 전역을 돌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연설과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2017년 69세로 죽기 전에는 “생명존중(pro-life) 활동은 돈을 받고 한 연기(act)였다”고 말했다.

◇3년을 끈 소송아이는 출산 후 입양

텍사스 휴스턴에 살던 매코비는 1969년 21세에 세 번째 임신을 했다. 16세때 결혼한 매코비와는 헤어졌고, 한동안 레즈비언으로 살던 시절이었다.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 “흑인들에게 강간당했다”고 허위 신고를 했지만, 피해 정황을 대지 못해 들통이 났다. 당시 텍사스 주법(州法)은 강간에 의한 임신은 낙태가 가능했다. 매코비는 불법적으로 낙태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여성의 선택권을 주장하는 변호사들과 합류해, 텍사스주 지법에서 승소했다. 패소한 지방검사 헨리 웨이드는 이를 곧장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결국 7대2로 승리했지만, 그 새 매코비는 출산했고, 아기는 입양됐다. 소송 내내 매코비는 한번도 법정에 나오지 않았고, 승소한 뒤 “무직에 우울증이 심해 낙태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10년 뒤엔 “강간당했다”고 했고, 4년 뒤엔 “거짓말”이라고 다시 말을 바꿨다. 매코비는 TV에도 자주 출연하는 유명인사가 됐고, 1989년 워싱턴 DC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에서 연설했다. 그러나 태아생명 존중론자들부터 “아기 살해범”이라는 욕설과 살해 위협도 받았다.

◇1995년 개신교로 개종 후 입장 바꿔

매코비는 1994년 매코비는 ‘나는 로입니다(I am Roe)’라는 자서전을 냈다.

매코비는 1994년 매코비는 ‘나는 로입니다(I am Roe)’라는 자서전을 냈다. 1995년엔 기독교로 개종해 세례를 받았고, 댈러스의 한 주택 수영장에서 거행된 이 세례식은 TV로 미 전역에 방송됐다. 이후 그는 미국 개신교 단체인 ‘생명 구출 작전(Operation Rescue)’의 옹호자가 됐다. 이 단체 사무실에 붙은 태아의 성장 과정을 담은 사진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여성인권론자들의 노리개였다”고 실토했다. 매코비는 2004년엔 심지어 미 연방대법원에 자신의 사건인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해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그는 2017년 죽을 때까지 낙태 반대 캠페인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죽기 전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다시 말 바꿔

2017년 임종 직전의 노마 매코비. 그는 이때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태아의 생명존중 활동가로 살아온 삶을 완전히 부정했다.

하지만 2017년 2월 죽기 전에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AKA(일명) 제인 로’에선 삶을 회고하며, 금전적 동기로 낙태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매코비는 “임종 전 고백”이라며 “여성이 낙태수술을 받든 안 받든 신경 안 쓴다. 나는 (태아 생명존중론자들에게) 대어(大魚)였고, 서로 도움을 줬다. 돈을 받고, 그들이 말하라는 대로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젊은 여성이 수술을 받기 원한다면, 그러라지! 그래서 ‘선택’이라고 부르는 거죠”라고 했다. “로 대 웨이드가 여성들 삶을 많이 구했지”라고 했다.

이 영화는 올해 5월 공개됐고, 실제로 세무 서류에선 매코비가 낙태 반대 활동 중에 45만 달러를 받은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매코비의 임종을 지켜보고 20여년간 가장 가깝게 교류했던 한 가톨릭 신부는 “태아의 생명을 존중한 매코비의 행동이 거짓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나는 생전에 매코비와 수천, 수만 번 얘기를 나눴고, 그건 진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