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입원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각) 퇴원해 백악관에 도착한 뒤 백악관 바깥쪽 계단을 통해 2층 발코니로 걸어 올라갔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계단이다. 2층 발코니로 올라간 그는 갑자기 마스크를 벗어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떠나가는 전용 헬기 마린원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는 포즈를 취했다.
그가 1층을 향해 몇 마디 던지자, 백악관 전속 사진사가 2층으로 급히 뛰어 올라가 그의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의 주변에는 경호원과 촬영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상황을 생중계하던 CNN의 패널들은 “사진사가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다” “경호원들이 (바이러스에)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CNN 앵커는 “마치 북한 같다. 친애하는 지도자가 나와 웅장한 건물을 배경으로 행사를 연출하고 사진 찍는 장면은 북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코로나에서 회복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치 영웅의 귀환 모습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쇼'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시도다.
한 시간쯤 뒤 그는 동영상 2개를 트위터에 띄웠다. 처음 올린 37초 분량의 영상은 장엄한 배경음악 속에 자신이 전용 헬기를 타고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줬다. 그가 날아오르는 헬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는 장면은 마치 영웅이 귀환하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됐다. 마스크를 벗고 거수경례를 하는 돌출 행동이 모두 이 영상 제작을 염두에 둔 것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로 올린 1분 26초 분량의 영상에선 그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나와 의료진에 감사를 표하며 “나는 코로나에 대해 많이 배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코로나가 당신을 지배하게 두지 말라.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항체가 있을 수도 있다. 백신이 곧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는 그의 막판 대선 전략을 그대로 보여준다. 코로나로 발이 묶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기 퇴원을 통해 코로나 극복의 선봉장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참모진의 반대에도 퇴원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태가 악화해 다시 입원할 경우 건강은 물론 선거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퇴원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에린 페린 트럼프 대선 캠프 대변인은 이날 폭스뉴스에 나와 “트럼프는 이제 코로나와 직접 싸운 경험이 있다”며 “이런 직접 경험은 바이든이 해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대하는 트럼프의 행동과 말에 대한 언론과 전문가의 비판이 쏟아졌다. 해럴드 슈미트 펜실베이니아대 의료윤리 보건정책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데 대해 뉴욕타임스(NYT)에 “할 말이 없다. 미쳤다”며 “그저 완전히 무책임하다”고 했다.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감염으로 배운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코로나를 하찮게 치부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가 완치되지 않은 트럼프가 경호원 등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CNN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를 전파할 수 있는데도 무책임하게 행동했다는 응답이 63%에 달해, 책임 있게 행동했다(33%)는 응답보다 크게 높았다. 트럼프가 지난 2일 코로나 확진을 발표했을 때 동정 여론 때문에 지지층 결집에 득이 될 것이란 분석도 있었지만, 각종 돌출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오히려 반감만 키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