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에 감염된 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요즘 트럼프는 워낙 많은 대면 행사를 치렀고, 잠복기인 최근 1~2주 새 접촉한 사람들이 수천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언론들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후보 지명식과 트럼프보다 하루 앞서 양성 판정을 받은 호프 힉스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유력한 감염 경로로 꼽고 있다.
26일 대법관 후보 지명 행사는 에이미 코니 배럿(48) 연방고법 판사를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하는 자리였다.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트럼프 캠프 관계자들, 배럿의 남편과 일곱 자녀 등 외빈 약 150명이 초청됐다.
이들은 행사장에 들어가기 전 코로나 약식 검사를 받았지만, 행사장에선 곧바로 마스크를 벗고 사회적 거리 두기도 지키지 않은 채 마음껏 악수하고 대화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2일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전했다. 행사 당일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잠복기일 가능성이 있어 사람들끼리 함부로 접촉하는 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방역 지침에 위배된다.
당시 로즈가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를 비롯, 거의 모든 참석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 등이 그대로 생중계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최한 행사나 대중 유세, 각료 회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언론들도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로즈가든 행사 참석자 중 마이크 리·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 배럿 판사의 모교인 노터데임 대학의 존 젠킨스 총장, 캘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선임고문 등 6명이 2일 줄줄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당일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배럿 판사는 지난 여름 한 번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된 것으로 전해졌으며, 현재까진 음성이다.
이날 로즈가든에 온 고위급 외빈들만 위험한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확진 소식에 대통령 경호팀 등 백악관은 벌집을 쑤신 분위기라고 CNN은 전했다. 백악관에선 올 초 코로나 초기엔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있었으나 코로나가 다소 잦아든 6월부턴 ‘노 마스크’가 불문율처럼 됐다고 한다. ‘코로나는 이 세상에 없다’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최전선의 무대가 바로 백악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 유세장 등을 돌아다니며 불특정 다수와 접촉해야 하는 경호팀의 경우 N95 방역용 마스크 지급을 요청해도 무시되기 일쑤였고, 코로나 정기 검사도 잘 이루어지지 않아 불만이 컸다고 한다. 2일 백악관 출입기자 중에서도 최소 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WP는 “코로나에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백악관의 분위기가 일주일도 안 돼 공포로 돌변한 모습은 셰익스피어 비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확진을 받기 직전의 상황을 봐도, 백악관 전체가 코로나 방역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인 호프 힉스 백악관 선임보좌관의 확진 판정 사실을 보고받고도 1일 오후 뉴저지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모금 행사를 강행했다. 이 행사에서도 트럼프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실내에서 거액 기부자 18명과 간담회를 하고, 실외에서 250여 지지자 앞에서 연설했다. 트럼프 본인도 이 자리에서 목소리가 쉬고 몹시 피로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다는 사실은 끝내 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