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우드워드(오른쪽에서 첫째) 미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이 2019년 12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있다. 책상에는 트럼프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같이 찍은 사진이 놓여 있다. 우드워드는 작년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18차례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신간 ‘격노(Rage)’를 오는 15일 발간할 예정이다.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코로나 관련 회견에서 “왜 미국인들에게 거짓말 했나. 우리가 여기에서 왜 대통령의 말을 믿어야 하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았다. 전날 공개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편집인의 신간 ‘격노(Rage)’를 통해 트럼프가 코로나의 치명성을 알고도 국민에겐 딴소리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후폭풍이 이어진 것이다. 트럼프는 “끔찍한 질문”이라며 “난 침착하자고 했을 뿐 거짓말 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우드워드는 책을 쓰기 전 트럼프를 18차례나 인터뷰하고 녹취까지 했다. 트럼프 해명이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이 상황은 트럼프에게 악재다. 이 때문에 백악관과 트럼프 캠프는 쑥대밭이 됐다고 뉴욕타임스와 폴리티코는 전했다. 누가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인 우드워드와의 ‘위험한 인터뷰’를 주선했는지를 두고 책임 공방까지 벌어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사위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 등이 비난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모진의 우려에도 “난 우드워드를 매료시키고 설득할 수 있다”며 인터뷰를 강행한 건 트럼프 본인이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 대통령이 지난 2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기자 브리핑을 하면서 질문자를 지목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과 관계가 나쁜 것 같지만, 오히려 언론 보도에 집착하고 특히 유력 매체와의 인터뷰를 즐기는 인물이다. 뉴욕 부동산 사업가 시절부터 온갖 사업 거래 성사 등을 언론에 알리고 싶어 했고, 본인 생일파티에까지 기자들을 초대하곤 했다. 부인 멜라니아와 사귈 때도 패션지 보그의 편집장 애나 윈투어에게 트럼프가 직접 멜라니아의 스타일링과 화보 촬영·인터뷰를 부탁했다고 한다.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 티머시 오브라이언은 10일 “트럼프는 우드워드라는 저명 언론인과의 인터뷰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매력 공세를 펼쳐 기자를 구워삶을 수 있다고 여겼을 텐데, 뒤통수를 맞은 셈이니 딱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5년 ‘트럼프네이션’이란 전기를 쓸 때 트럼프와 인터뷰한 일화를 공개했다.

당시 트럼프는 오브라이언을 전용기에 태워 자신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 등에 데려가고, 한밤중에 전화하거나 자신이 멋지게 보도된 신문 스크랩을 모아 우편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트럼프가 “책 내용이 부정적으로 나오면 언론계에 발 못 붙이게 밟아주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오브라이언이 “내가 어떻게 쓸지 불안하면 왜 인터뷰에 협력했냐?”고 묻자 트럼프는 “첫째 나에게 경험이 될 거 같아서, 둘째 너랑 노는 게 좋아서, 셋째 네가 트럼프란 인간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려고”라며 친근감을 표시하다, “날 부정적으로 그리면 사람들이 책을 사볼 것 같은가?”라고 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발간된 책에는 트럼프의 탈세 등 안 좋은 내용이 담겼고, 트럼프는 즉각 오브라이언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 트럼프는 이 일로 법정 증언을 했고 세무 기록도 제출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이번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했다. CNN은 10일 트럼프가 인터뷰 과정에서 우드워드에게 “당신이 나에 대해 좋은 책을 써주면 영광이겠다” “김정은과 찍은 사진 원본을 가져가시라”며 환심을 사려고 하다가 “결국 이 책으로 당신이 날 망치겠지” “어차피 거지 같은 책 쓸 텐데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냐”며 한탄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언론에 나오는 자기 이미지에 과도하게 집착하다 보니 보도가 불리하게 나올 줄 알면서도 언론 인터뷰를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