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오라일리와 린다 펠드먼/아이비 버클리

미국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70대 남성이 아내와의 39년 결혼 생활을 기억하지 못한 채 다시 청혼해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 사연이 전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 마이클 오라일리(77)와 린다 펠드먼(78) 부부가 지난 10일 한 요양 시설에서 두 번째로 결혼식을 치렀다고 전했다. 이 결혼식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오라일리가 작년 11월 아내에게 다시 청혼한 데 따른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캘리포니아 얼러미다에서 국선 변호인으로 일하던 펠드먼은 “좋은 변호사의 최종 변론을 보고 싶으면 오라일리의 재판을 보라”는 동료의 말에 그의 법정을 찾았다. 펠드먼은 훗날 “그는 정말 뛰어난 변호사였다”고 회상했다.

처음에 두 사람은 동료이자 멘토·멘티 관계였다. 당시엔 서로 다른 배우자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점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지내다가,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 모두 이혼했고, 그제야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펠드먼은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린 아들도 있어 다시 연애를 시작할 마음이 없었다”고 망설였지만, 오라일리는 끈질기게 구애했다.

몇 년간 교제한 두 사람은 서로의 자녀를 합친 후 가정을 꾸렸다. 오라일리는 두 딸, 펠드먼은 아들 한 명을 두고 있었다. 1987년에는 집 거실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고, 피로연은 지인 집에서 치렀다. 이후 이들은 중국, 폴란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이스라엘, 튀르키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를 함께 여행하며 관심사를 공유했다.

성격은 정반대였다고 한다. 펠드먼은 자신을 “신경질적인 유대인 여자아이”라고 표현했고, 오라일리는 모험을 즐기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남성이었다. 펠드먼이 그를 미술관·극장으로 끌어냈다면, 오라일리는 펠드먼을 래프팅 같은 활동으로 이끌었다. 펠드먼은 “우리는 서로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주며 균형을 맞췄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7년 전 마이클 오라일리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면서 달라졌다. 그 전까지 그는 방대한 분량의 최종 변론을 메모 한 장 없이 네 시간 동안 해낼 만큼 기억력이 뛰어났지만, 병이 진행되면서 아내의 이름과 신분을 떠올리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집에서 돌보던 펠드먼은 “문 밖에 나가면 길을 잃어버렸고, 말을 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2년여 전 요양 시설 입소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펠드먼은 “남편은 제가 방문할 때마다 미소를 짓는다”고 했다. 그는 “그저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는 말로 남편의 상태를 설명했다. 오라일리는 여전히 애정 표현이 많은 사람으로, “늘 손을 잡고, 팔을 두르고,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작년 11월, 오라일리는 펠드먼을 끌어안으며 “40년 전 했던 그 질문”을 다시 건넸다. 펠드먼은 39년째 부부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말하면 남편을 더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아무 설명 없이 청혼을 받아들였다.

결혼식은 요양 시설 직원들과 가족, 지인 등 25명이 마련했다. 식장에는 꽃과 풍선, 영상을 담은 웨딩 앨범이 놓였고, 2단 케이크도 준비됐다. 린다 펠드먼은 남편이 결혼식을 이해할지 걱정했지만, 그는 그날 내내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펠드먼은 “그는 모든 것이 우리에 관한 것임을 깨달았다”며 “그는 행복했다”고 말했다.

행사는 하루로 끝났지만, 린다 펠드먼은 두 번째 결혼식이 앞으로의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이야기는 희망의 이야기”라며 “가장 어려운 장애물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