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유전병을 가진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태어난 아이 67명 가운데 10명이 암 진단을 받는 사례가 보고됐다. 이에 단일 기증자에 의한 출산 횟수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프랑스 루앙대학병원의 생물학자 에드비쥬 카스페르는 지난 24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유럽인간유전학회에서 이 같은 사례를 발표했다.
기증자는 암 억제 유전자인 TP53에 돌연변이가 있는 남성이었다. 이 돌연변이 보인자는 희귀 유전성 암 질환인 리-프라우메니 증후군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2008∼2015년 프랑스, 독일 등 유럽 8국에 사는 46가족이 이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최소 67명의 아이를 출산했다. 이 가운데 10명이 뇌종양이나 호지킨림프종 등의 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또 다른 13명의 아이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지만 암이 발병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이들은 암 발병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진을 받아야 한다.
기증자는 본인이 희귀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사실을 모른 채 정자를 기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의 ‘유럽정자은행’도 유전병 보인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실시했으나 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증이 이뤄질 당시에는 TP53 변이와 암 관련성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사례로 동일 기증자에 의한 출산 횟수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는 기증자 1인당 출산 횟수를 10회로 제한하고, 덴마크는 12회, 독일은 15회까지다. 하지만 유럽 전체적으로는 동일 기증자를 통해 태어날 수 있는 자녀 수를 규제하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네덜란드의 남성은 500~600명의 아이를 출산하는 데 정자를 댔다가 법원에서 무분별한 정자 기증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