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은 얼룩말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한참 쳐다보다 이내 자리를 떴다. /유튜브 Professor Liana Zanette

사바나의 야생 동물들은 ‘백수의 왕’ 사자와 사람의 소리 중 무엇을 더 무서워할까. 실험 결과 야생 동물들은 사자 울음 보다 사람 말소리를 들었을 때 반응 속도가 40% 더 빨라지는 등 사람에 더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캐나다 웨스턴대학교의 리아나 자네트 교수 연구팀은 남아프리카 그레이터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진행한 이 같은 결과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물웅덩이 근처에 야생 동물이 10m내로 접근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카메라-스피커 시스템을 설치한 뒤각각 사람이 차분하게 말하는 소리,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 개 짖는 소리나 총소리, 새 울음소리 등을 재생시켰다.

6주간 촬영된 4000여 건의 영상을 분석한 결과, 야생 동물들은 사람의 음성이 나올 때 반응 속도가 사자나 사냥 소리 때보다 약40% 더 빨랐다. 웅덩이를 버리고 도망치는 비율도 2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 음성이 들리자 먹이를 포기하고 도망치는 표범./ 유튜브 Professor Liana Zanette

실험 영상 일부를 보면, 얼룩말은 사람 말소리가 들리자마자 곧바로 물웅덩이를 버리고 뛰는데 비해, 사자 울음이 들릴 땐 동작을 멈추고 수초 간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응시하다 이내 자리를 떴다. 표범의 경우 잡은 먹이를 질질 끌고 오다 어디선가 사람 음성이 들리자 먹이를 버리고 냅다 뛰는 모습이 포착됐다. 기린, 하이에나, 쿠두, 멧돼지, 임팔라, 코뿔소 등도 사자 소리보다 사람 음성에 더 민첩하게 반응했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코끼리도 사람 음성이 들릴 땐 도망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자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진했다. 스피커를 때려부수는 장면도 목격됐다.

사람 음성을 들은 코끼리가 황급히 자리를 뜨는 모습. /@Professor Liana Zanette
사자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은 코끼리가 스피커를 부수고 있다. /@Professor Liana Zanette

이런 결과는 야생 동물들 사이에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임을 보여준다. 자네트 교수는 “북미, 유럽, 아시아, 호주에서 수집한 데이터와 현재 아프리카에서 진행 중인 연구를 보면 야생 동물들은 사자, 표범, 늑대, 퓨마, 곰, 개 같은 인간 외의 최상위 포식자보다 인간을 더 두려워한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연구에서는 사람의 목소리 재생을 통해 밀렵이 많이 발생하는 곳에서 동물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지 탐구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