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바라. /조선DB

사람이 먼저냐 카피바라가 먼저냐. 아르헨티나에서 ‘개발 대 환경보호’라는 해묵은 논쟁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대형 설치류인 카피바라 떼가 아르헨티나의 한 부촌에 출몰하면서다. 마을 주민들이 카피바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했는데, 환경단체들이 “카피바라의 서식지를 개발한 것이 잘못”이라고 반격하며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약 400마리의 카피바라 떼가 최근 몇주 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노르델타를 습격해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르델타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되는 주거 단지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내에서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힌다.

카피바라는 성체의 몸집이 최대 1m, 몸무게는 최대 60㎏에 달하는 대형 설치류로 온순하고 친화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르델타 주민들은 카피바라로 인해 각종 피해를 입는 중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카피바라 떼가 정원을 헤집거나 주민들의 반려견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또 카피바라 때문에 교통사고도 늘었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결국 일부 주민이 소총을 들고 카피바라 사냥에 나서자, 환경단체는 “카피바라를 보호해야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단체는 노르델타가 부동산 개발을 이유로 파라나강 습지를 먼저 파괴했고 터전을 잃은 카피바라가 마을로 몰려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르델타와 카피바라 사이의 충돌은 계층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진보적 페론주의자(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토대로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취임한 후안 도밍고 페론 시기 정책 지지자)들은 노르델타가 그들만의 폐쇄적인 주거 단지를 만들어 서민들을 차별한다는 입장이다. 페론주의자들은 이번 소동에 대해 카피바라를 ‘계급 투쟁의 선봉장’으로 묘사하며 카피바라를 응원하고 있다.

생태학자 엔리케 비알레는 “카피바라가 마을을 침입한 게 아니라, 노르델타가 카피바라의 서식지를 침범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노르델타는 습지의 흡수 기능을 앗아갔다”면서 “재난이 닥치면 결국 인근 빈민촌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