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실시되는 페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파 후보들이 여론조사 선두권을 형성하면서 ‘블루 타이드(blue tide·중남미 우파 연쇄 집권)’가 이어질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대선에 네 번째 도전하는 알베르토 후지모리(1938~2024년) 전 대통령의 딸 케이코 후지모리(51)가 승리해 중남미 국가에서 일본계 부녀(父女) 대통령 탄생이라는 기록을 세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우파 정당 민중권력당의 케이코 후지모리 후보가 15% 내외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중도 우파로 분류되는 코미디언 출신 카를로스 알바레스와 강경 우파 성향의 라파엘 로페스 알리아가 전 리마 시장이 뒤를 잇는 ‘3강 구도’가 형성돼 있다. 좌파 성향 후보들은 5% 안팎의 지지율로 고전하는 양상이다.
페루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2위 간 결선 투표를 오는 6월에 치를 예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여론조사 구도가 본투표까지 이어질 경우 결선 투표와 상관없이 ‘블루 타이드’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여론조사에서 40%가량이 ‘누굴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한 점이 변수로 꼽힌다.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케이코의 ‘4수(修) 도전’ 성공 여부다. 그는 1990년부터 10년 간 페루를 철권 통치했다 축출됐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장녀다. 부모의 이혼 때문에 19세에 어머니 대신 영부인 역할을 하며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후지모리는 2000년 3선(選)에 성공한 뒤 부패 스캔들이 터지자 일본으로 망명한 상황에서 의회에 의해 파면됐다. 케이코는 축출 후에도 페루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2006년 총선에서 당시 최다 득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후지모리 이후 등장한 세 명의 대통령(알레한드로 톨레도·알란 가르시아·오얀타 우말라)은 임기를 채웠지만, 이후 집권한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정상적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혼란이 지금까지 지속됐다. 선거를 통해 5년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이 야권과의 불화나 스캔들로 낙마하면 다음 선거 때까지 남은 임기를 채우기 위해 권력을 승계받은 새 대통령이 또 축출되는 악순환 등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 속에 최근 10년 동안 페루 대통령으로 재직한 사람은 8명에 이른다. 만성적인 정치 불안과 국정 혼란이 지속되면서 후지모리의 강력한 리더십과 고속 성장에 대한 향수가 강한 보수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케이코는 2011년·2016년·2021년 대선에 출마해 결선까지 진출했지만, 모두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다.
케이코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전국 유세에서 경제 발전과 개혁 등 아버지의 유산을 강조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케이코는 지난달 칠레 우파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는 등 자신을 ‘블루 타이드’ 일원으로 각인시키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케이코는 탈규제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페루의 경제 성장을 이끈 아버지의 개혁 정책을 이어받아 만성적인 생활고를 해결하고 치안 질서도 확립하겠다고 공약하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후지모리파의 열기 속에서 우리 당은 경제 부흥과 사회 질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재·인권 탄압·부정 부패 등 아버지 통치 시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유권자층의 거부 정서에 발목이 잡혀 번번이 눈앞에서 승리를 놓쳤던 상황이 이번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