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해 온 이란이 일본 관련 선박에 한해 통과를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계적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란이 특정 국가를 상대로 ‘선별적 개방’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20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이 요청할 경우, 일본 관련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란은 일본 정부와 해협 개방 문제를 놓고 협의를 시작했으며, 외교 채널을 통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원유 수입의 약 90%를 이 경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해협을 사실상 차단해 왔고, 전쟁이 곧 4주차에 접어들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비축유 방출로 대응에 나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란이 일본 선박 통과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에너지 수급 불안을 일부 완화해 ‘우군 확보’에 나서려는 외교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일 이란 대사를 지낸 아라그치는 일본과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며 “부당하고 불법적인 침략”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는 의사도 밝혔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이에 대해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호르무즈 해협 전체가 안전해지도록 외교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지만, 외무성은 양측이 일본 선박의 통과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협의를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위) 미국 대통령이 19일 워싱턴 DC 백악관 국빈실에서 만찬을 하면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함께 서서 발언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한편 미국은 일본 등 동맹국들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보호를 위한 군사적 역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 군함 파견 등을 통한 기여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주일미군 숫자 등을 언급하며 “일본이 더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일본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달리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려 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위해 기여하는 만큼 일본도 어떤 방식으로든 상응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일본은 전후(戰後) 평화헌법에 따라 군사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어 대응 수위에 한계가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용인할 수 없다. 일본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지속 규탄해왔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회담 직후 “일본 법률의 범위 내에서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했다”고 공개하는 등 군사적 개입에는 신중한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