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리카가 자국 전직 대법관을 미국에 인도(引渡)하며 조직범죄 척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중 하나로 분류되는 코스타리카는 최근 마약 조직 유입과 강력 범죄 증가로 치안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로이터에 따르면 코스타리카 정부는 이날 국제 마약 밀매 혐의를 받는 전직 대법관 셀소 감보아(50)를 미국으로 보냈다. 이는 코스타리카가 자국민을 외국에 인도한 첫 사례로 알려졌다. 카를로 디아스 법무장관은 “국적을 방패 삼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2025년 단행된 사법 개혁의 결과다. 코스타리카는 조직범죄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민 인도를 금지하던 조항을 폐지했다. 감보아는 2018년 부패 의혹으로 대법관직에서 해임된 이후, 정치권과 조직범죄 간 유착 가능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지목돼 왔다. 그는 대법관에 취임하기 전 치안장관과 정보국장 등 사법·행정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로 평가된다.
로드리고 차베스 로블레스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빙산의 일각”이라며 권력층과 범죄 조직 간 연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 7일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열린 중남미 지역 마약·테러 범죄 카르텔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 연합 성격의 ‘미주의 방패’ 회의에 참석한 바 있다.
감보아는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미국에서 증언할 의사를 밝혀 파장은 확산될 전망이다. 이날 감보아는 같은 날 체포된 마약 밀매 조직원 에드윈 로페스 베가(별명 ‘페초 데 라타’)와 함께 미국행 항공편으로 텍사스주로 이송됐다.
◇‘풍요로운 해안’ 위협하는 범죄 급증
이번 사건은 코스타리카의 치안 환경 변화와 맞물려 주목된다. 스페인어로 ‘풍요로운 해안’을 뜻하는 코스타리카는 1948년 내전 이후 군대를 없애고 교육·보건에 집중하는 정책을 펼치며 안정과 번영을 유지해왔다. 온건 좌·우파가 정권을 주고받으며 비교적 평화롭게 민주주의를 유지해 ‘중남미의 스위스’로 불려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등과 연결된 마약 밀매 조직이 유입되면서 살인 등 강력 범죄가 급증했다. 2023년과 2024년 살인 사건은 각각 907건과 879건으로, 최근 15년 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군대가 없는 구조상 약 1만5000명의 경찰이 국경 관리와 마약 단속, 치안 유지까지 맡으면서 대응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치안 불안은 정치 지형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대선에서는 강경한 범죄 대응을 내세운 우파 국민주권당(PPSO)의 라우라 페르난데스 후보가 48%를 득표하며 결선 투표 없이 당선됐다. 그는 차베스 정부에서 경제장관과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로, 좌파 국민해방당 후보를 큰 격차로 따돌리며 우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