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체커(왼쪽) 미국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고위 관리와 니제르 군정의 알리 마하만 라민 제인 총리. /미 국무부 아프리카 사무국 X

닉 체커 미국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고위 관리가 지난 13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이 나라 총리 및 외무장관과 잇따라 만났다. 이번 만남에서 미국은 니제르의 주권을 존중하며 니제르·부르키나파소·말리의 3국 협의체인 ‘사헬 국가 연합’과 경제 및 안보 분야에서 지속적 협력 의사를 전달했다고 니제르 주재 미국 대사관이 밝혔다.

체커는 니제르에 앞서 방문한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서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비슷한 의사를 전달했다. 사헬 국가 연합은 그동안 서방으로부터 ‘독재 국가의 모임’으로 비난받아온 협의체다. 이 나라들에서 2020~2023년 순차적으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민간 정부를 축출하고 집권했는데, 서방과 주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제재에 맞서 2024년 사헬 국가 연합을 창설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기였던 2023년 니제르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는 등 세 나라를 압박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기조를 바꾸고 국무부 고위 관리를 보내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에 ‘주권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등 기존 미국적 가치보다 국익을 중시하는 트럼프식 실리 외교가 아프리카에서도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하라 사막 남쪽 사헬 지역에 위치한 이 나라들은 군부 집권 이후 옛 식민지 국가인 프랑스를 비롯해 서방과 거리를 두고 아프리카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와 밀착해왔다. 러시아는 말리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 군사 인력과 용병을 파견하고 있다. 니제르에서는 프랑스 기업이 운영하던 우라늄 광산이 군정에 몰수된 뒤 러시아와의 합작 운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만성적인 치안 불안을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꾸준히 활동해온 이 지역은 금과 리튬, 우라늄 등 핵심 광물 자원이 풍부해 전략적 가치도 높다. 이 때문에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해왔다.

보편적 가치를 앞세워 개발 원조에 방점을 뒀던 미국의 대(對)아프리카 외교 원칙이 트럼프 시대에서 사실상 백지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트럼프는 지난해 아프리카의 중심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백인 차별 문제를 거론하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데 이어 그해 11월 남아공 주최 G20(20국) 정상회의를 통째로 보이콧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중국과 러시아와 밀착해온 아프리카 길들이기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후 민주적 정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존 미국과 서방 정권이 거리를 둔 군부 쿠데타 세력과도 협력하며 미국 영향력 확대에 나서는 모습이다. 미국과 사헬 국가 간 협력이 이미 진행된 정황도 포착됐다. 로이터는 “미국이 말리와의 협의를 통해 드론과 정찰기를 활용한 정보 수집 작전 재개를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이 지역에서 준동하는 극단적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동향을 파악해 이들의 미국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